서울엔 정릉이 두 개 있다.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정릉(靖陵)은 조선 11대 임금 중종의 왕릉이다. 또 다른 정릉(貞陵)은 성북구 정릉동에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의 왕릉이다.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신의왕후)은 건국 이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신덕왕후가 조선의 첫 왕비이며, 목말라하던 이성계에게 냉수도 급히 마시면 탈이 날 수 있다며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한 줌 띄어 주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시선]아파트 숲에 갇힌 세계유산](https://img.khan.co.kr/news/2020/04/19/l_2020042001002217200181371.jpg)
정릉이 지금 자리에 오기까지 슬픈 사연이 있다. 처음엔 경복궁에서 가까운 중구 정동 인근에 성대하게 조성되었다. 정동(貞洞)이란 이름도 정릉이 있던 마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생전에 왕위 계승을 두고 이성계의 첫 부인의 자식인 이방원과 갈등관계가 있었고, 왕자의 난을 거쳐 이방원이 왕위(태종)에 오른 뒤 정릉은 도성 밖인 지금의 위치로 쫓겨났다. 묘소는 오랜 시간 방치되다가 현종 10년(1669년)에서야 정릉으로 복원되었고, 2009년 6월 다른 조선 왕릉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권력에 미움을 받아 버려진 역사를 가진 정릉 주변엔 자연스럽게 백성들의 삶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겨난 마을은 성북구 혜화동에 서울대학교 캠퍼스가 있었던 시절 서울대 교수들이 단독주택을 짓고 모여 살았다고 해서 ‘정릉교수단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도 1970년대 지어진 고급 단독주택들이 본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보존이 필요한 근대생활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이 동네가 시끌벅적하다. 12년 전에 이 지역이 ‘정릉6 주택재건축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는데, 올해 3월 정비구역 일몰제로 정비구역에서 해제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귀한 단독주택단지를 허물어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를 짓는 것도 모자라, 인류의 유산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콘크리트 아파트 숲에 가두어 버리는 재건축은 처음부터 안될 말이었다. 과거 몇몇 주민들과 외부 투기세력들이 무리하게 조합 설립을 추진했다가 주민들과 3년이 넘는 법정 다툼을 거친 끝에 조합 설립이 무효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재건축에 반대하는 단독주택 소유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 면적이 전체 정비구역 면적(4만4498㎡)의 절반(2만1205㎡) 수준으로 도시정비법에 따른 조합 설립이 불가능함이 객관적으로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위원회는 서울시에 재건축 정비구역 지정을 2년 더 연장해달라는 신청을 했다. 이기적이고 잘못된 희망고문일 뿐이다. 다행스럽게 지난 4월 초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나머지 지역의 연장은 승인하면서, 정릉6구역만 ‘심사보류’ 결정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 타당성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에 사는 한 사람의 주민으로서, 마을 공동체를 아끼고 인류의 문화유산을 후대에 전해주고 싶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감히 다음 도시계획위원회 심의회의 전에 정릉에 찾아와보실 것을 권한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봄꽃 가득한 동네 골목과 예쁜 정원이 오가는 시민들에게 열려 있고,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살아 있는 정릉이 재건축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