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루 경찰이 2019년 3월8일 2t 가량의 코카인 압수품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리마|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마약 산업이 전례 없는 ‘불경기’를 맞고 있다. 국경이 닫히면서 마약 밀매가 어려워진 데다, 각국 봉쇄조치에 마약 수요도 줄었다. 당국의 특별한 조치 없이도 자연스레 불법 마약 거래 퇴치 효과를 거뒀다는 분석과 함께, 사재기·오남용 등의 피해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멕시코·브라질 등 중남미 마약 조직들이 최근 미국과 유럽으로의 마약 밀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멕시코 마약 밀매 조직들은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의 육로 국경이 닫혀 차량 밀수가 어려워지자 지하터널을 뚫거나 드론을 띄우는 식으로 ‘밀수 전술’을 바꾸기까지 했다. 합성 마약인 펜타닐은 도매가격이 10%나 뛰었다. 중국·인도 등지에서 구하던 원료 화학물질을 가져오는 것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들 조직은 미국에서 옷가게 등 위장상점을 통해 마약 자금 세탁을 해왔는데, 미 정부가 비필수 매장들에 문을 닫도록 명령하면서 수익금을 멕시코로 옮겨오는 것도 힘들게 됐다. 멕시코 최대 카르텔 시날로아는 수장인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일명 엘차포)가 감옥에 가는 등의 위기를 맞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만한 위기는 없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마약 수요가 줄었다는 보고도 나왔다. 프랑스 약물중독감시협회(OFDT)의 4월 보고서에 따르면 술집 등이 영업을 중단한 이후로 오락성 약물 사용이 줄었다. OFDT는 마약상들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마약 대신 손 소독제나 마스크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시장으로 가는 마약의 주요 관문인 브라질 산투스 항구에서도 지난 3월 적발된 마약의 양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7% 급감했다. 콜롬비아나 페루에서 들어오는 마약의 공급량이 줄었을 뿐 아니라 유럽에서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산투스 현지 경찰인 시로 모라에스는 “마약 조직 그들 나름의 불황(recession)를 겪고 있다”고 표현했다. ‘마약 산업계’에 연루된 페루 농가들도 타격을 받았다.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잎을 생산하는 페루에선 93%의 코카잎이 마약 조직에 거래되는데, 최근 가격이 70%나 급락했다. 페루 마약 단속 당국의 마누엘 앙헬 라미레스 바스케스는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없다. 완전히 마비됐다”고 했다.
로이터 통신은 “코로나19가 전 세계 당국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며 “전 세계의 거대한 마약 산업을 하루아침에 둔화시키고, 마약산업 종사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고통을 안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마약 산업의 위축은 일시적인 것일 뿐 봉쇄조치가 완화하면 바로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페루 경찰이 2017년 7월11일 작전 중 압수한 코카인 벽돌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리마|로이터연합뉴스
다만 코로나19 국면에서 각국 당국이 마약 밀매 조직의 행보 및 복용자들에 대해 엄밀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멕시코에선 수익이 줄어든 마약 조직들이 경쟁조직과 마찰이 늘면서 살인사건이 급증했다. 지난 21일 멕시코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멕시코 살인 건수는 3078건으로, 2월보다 8%가량 늘었다. 실제로 3월 발생한 살인사건의 대부분은 마약범죄와 관련된 사건이다. 일부 마약 조직들은 일부러 시장을 조작하기 위해 조직원들에게 살해 협박을 하면서 메타암페타민(필로폰) 등의 공급을 억제하고 있다고 AP통신이 지난 19일 보도했다.
멕시코 보안 전문가인 알레한드로 호프는 멕시코 일간 엘 유니버설에 “당분간 마약 범죄 조직들은 엄청난 위기를 맞을 수 있지만 코로나19 위기가 끝나면 범죄 행각은 반복될 것”이라면서 “(코로나19라는) 예외적인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 (범죄 조직에 내줬던) 국가의 부재를 메우고, 주요 갱단을 해체하고, 그들의 합법성을 전복시키고, 시민들과 보안·사법 당국의 관계를 바로 잡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유럽과 미국에선 마약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다. 미 CNN은 지난 5일 “마약 사재기와 공급 부족 현상이 지속하면 복용자들이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고 했다. 봉쇄기간 비축해둔 약물을 과다 복용하거나, 더 강력한 대체제를 찾아나설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다. 의약 정책 싱크탱크인 트랜스폼의 스티브 롤즈 수석 정책 분석가는 “마약 복용자들은 기저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아 다른 사람에 비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중으로 취약하다”며 “이들을 보살필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