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벼랑에 선 콜롬비아 빈민, 집집마다 ‘붉은 천 SOS’

김향미 기자

수도 보고타 주민, 창문에 붉은 천 걸어 식량 지원 호소·연대

지난해 반정부 시위 거센 남미, 빈곤층 대책 없인 불씨 여전

지난 15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보고타의 한 건물 창문들에 붉은색 헝겊들이 걸려 있다. 붉은색 헝겊은 코로나19 발병 후 생활고를 겪는 가정이 식량 지원을 요청하는 신호다.  보고타 | AFP연합뉴스

지난 15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보고타의 한 건물 창문들에 붉은색 헝겊들이 걸려 있다. 붉은색 헝겊은 코로나19 발병 후 생활고를 겪는 가정이 식량 지원을 요청하는 신호다. 보고타 | AFP연합뉴스

콜롬비아 보고타의 빈민가에선 집집마다 문 앞에 붉은색 헝겊이 나부낀다. ‘배고픔’을 호소하는 ‘SOS’(조난신호)다. 코로나19로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전국 봉쇄령이 내려진 후 보고타 빈민가인 소아차 지역 당국이 격리조치로 생계가 곤란해진 가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빨간 천을 내걸도록 했는데, 한 달 동안 보고타 다른 지역까지 ‘붉은 헝겊 물결’이 확산됐다고 현지 언론 엘 티엠포가 최근 보도했다.

수건부터 식탁보, 티셔츠, 올림픽 국가대표 응원 시트까지 붉은색 천이라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도시 곳곳을 뒤덮고 있다. 주민 산드라 라미레스는 지난 19일 엘 티엠포에 “우리는 집에 갇혀 일하러 갈 수 없었다. 집에는 돈도 없고 먹을 음식도 없다”고 했다. 당초 붉은색 천이 걸린 집에 이웃들이 음식을 넣어주면서 ‘연대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수가 늘어나고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붉은색 헝겊은 정부를 향한 분노를 뜻하게 됐다.

27일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콜롬비아 정부는 지난 7일 “가난, 극빈, 취약” 상황에 처한 300만가구에 평균 16만페소(약 40달러·약 4만9000원)의 보조금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일하던 식당에서 해고된 다니엘라 카스타노(21)는 아직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 카스타노는 남편과 함께 자녀 2명, 옆집에 사는 조부모까지 돌봐야 했기 때문에 생애 처음으로 거리에 나가 구걸을 했다. “부끄러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카스타노에게 돌아온 건 경찰의 벌금 딱지였다.

코로나19는 콜롬비아의 사회문제를 두드러지게 했다. 구호단체 기아대책행동의 존 올랜도는 알자지라에 “보고타에서 붉은색 천은 굶주리고 있다는 신호이고, 검은색 천은 가정에서 폭력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란색 천은 의료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며 “앞으로 상당기간 구호 요청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 시스템의 부실함을 집 앞에 내걸린 색색의 천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붉은 헝겊’은 사실 콜롬비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빌라 솔다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 볼리비아 라파스의 엘 알토,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엘 발레 등 중남미·카리브해 연연 국가들의 빈민가 주민 약 1억1300만명이 코로나19로 인한 격리조치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지난 21일 전했다.

게다가 중남미 지역 경제인구의 절반가량은 비공식적인 지하경제에서 일한다. 이들이 실업과 같은 타격을 받았다 하더라도 공적인 구제를 받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국 정부가 현금 보조금 등을 약속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이유다. 또한 빈곤층은 위생 여건이 좋지 않은 데다, 생계유지를 위해 격리조치를 어길 가능성도 높아 전염병 감염 위험도 큰 만큼 종합적인 빈곤층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알리시아 바르세나 유엔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ECLAC) 사무총장은 27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콜롬비아·칠레 등에서 물가상승 및 의료·교육 시스템에 반발하는 반정부 시위가 거셌던 것을 상기하면서 “지난해 폭발한 사회 위기는 이미 이 지역의 불평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코로나19 위기에서 빈곤층의 소득을 보장하지 않으면 이 위기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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