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것은 1월20일이었다. 그로부터 100일 정도 지났다. 방역 모범국가로 일컬어질 만큼 우리 정부의 대처는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많을 것들을 돌아보게 했다. 한 달 전 칼럼에서 나는 이 사태를 ‘이중적 뉴노멀 사회’의 도래로 명명한 바 있다. 경제의 불확실성이라는 뉴노멀에 전염병의 불확실성이라는 또 하나의 뉴노멀이 중첩돼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경제와 전염병의 결합에 대해선 ‘위험의 경제학’이 요구되고, 허세로 드러난 글로벌 거버넌스를 대신해 ‘국가의 귀환’이 이뤄지며, 이 사태가 끝난 후 돌아갈 미래의 자리가 현재의 자리와 과거의 자리 사이에 놓인 ‘제3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망해 봤다.
사회학자로서 어려운 일 중 하나는 현재진행형인 사태에 대한 중간 관찰과 향후 전망이다. 코로나19가 미치는 영향은 어디까지, 어떻게 진행될까. 코로나19 사태는 페르낭 브로델이 말한 ‘사건사’를 넘어선 ‘국면사’다. 국면의 역사는 나날의 사건사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사유 및 행위를 제한한다.
지난 2월 어느 날 지하철을 탔을 당시의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승객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그때 누군가 기침을 하자 놀람과 짜증과 두려움이 담긴 눈빛들이 쏟아졌다. 이 사태가 놓인 자리가 선명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미지의 바이러스가 건드린 것은 바로 우리 생명이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인류의 심층이 개인과 사회라는 세상의 표층으로 올라오는 순간, 울리히 벡이 강조했듯, 안전이라는 가치가 다른 모든 것들을 단숨에 몰아내 버렸다.
코로나19 광풍이 이탈리아 등 서구사회를 강타하자 분석과 전망의 담론들이 쏟아졌다. 스웨덴식 집단면역 전략과 중국식 봉쇄 전략에 대한 발빠른 평가가 이뤄졌다. 올겨울 제2차 파고 가능성에 대한 두려운 예측이 이어졌다. 그리고 허구의 세계화, 포퓰리즘의 부상, 고용 뉴딜과 기본소득의 요청, ‘언택트’ 사회와 문화의 도래, 자연과 문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 등이 줄을 이었다. 이 과정에서 서서히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다른 세계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국면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코로나 모멘텀’이었다.
코로나19 사태는 기본적으로 ‘의학적 국면’이다. 이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적 사실에 대한 존중이다. 코로나바이러스19의 특징은 경증상 상태에서 전염력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지구적으로 벌써 300만명이 넘는 확진자와 20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다. 백신 개발이 문제 해결의 근본책일 터인데, 의학자들은 1~3년 정도의 시간을 예상하고 있다. 높은 전염성과 상당한 치사율이 낳고 있는 이 지구적 공포가 언제 종식될지는 그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다.
앞선 신종플루 사례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신종플루는 2009년 멕시코에서 발병해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201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종식을 선언했지만, 동남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에서 극심해 28만명 정도 사망한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 분명한 사실은 이 가공할 바이러스들이 불시에 우리를 방문할 수 있고, 체계적인 대책들을 마련해놓지 않는다면 삶의 터전이 무기력한 무방비 도시처럼 일거에 황폐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무릇 어떤 문제 해결이든 그 근본 원인의 성찰이 중요하다. 의학자들에 따르면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등은 동물에서 인간으로 감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자연 파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전염병이다. 여기에 물적, 인적 세계화가 결합하면서 순식간 지구화된 위험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국면사는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청한다. 세계화를 거역할 수 없다면, 자연 파괴가 계속되는 한 인류는 주기적인 바이러스 폭풍을 비켜갈 수 없다. 의료 시스템이 감당할 ‘피해 최소화 전략’과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전방위적 뉴딜’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는다. 당장 급박한 과제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무한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삶의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지금 우리 인류가 마주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환경 파괴의 계몽과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생태적 실천의 근본적인 처방이 이뤄지지 않는 한, 코로나 시대라는 이 국면의 역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