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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불평등으로 ‘기본소득’에 접근 할 수 없는 이들

입력 2020.04.29 20:47

수정 2020.04.2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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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배달을 하다 가장 많이 목격하는 건, 서울시 재난긴급생활비 홍보물이다. 골목마다 포스터가 붙어 있고 편지함은 물론 길바닥까지 전단이 뿌려져 있다. 인터넷 신청이 간단해 보여 접속했다가, 신청서를 출력하라 해서 포기했다. 작성한 서류를 사진으로 찍어서 업로드해도 된다 하니 스캐너는 없어도 돼 다행이다. 프린터가 연결된 컴퓨터가 없거나 무슨 말인지 모르면 다산콜센터로 전화하거나 주민센터를 방문하라는데, 콜센터와 공무원들의 영혼 없는 표정과 민원인들의 성난 얼굴이 아른거린다.

[직설]가난·불평등으로 ‘기본소득’에 접근 할 수 없는 이들

신청 자격 확인부터 막막하다. 코로나19 공부를 마친 국민들은, 중위소득 100%라는 새로운 챕터를 공부 중이다. 1인 가구는 175만7194원으로 최저임금과 비슷하다. 176만원의 소득을 얻은 자는 중위소득 100%를 약 3000원 넘기므로 긴급생활비를 받을 수 없다. 네이버 지식인에는 소득산정 기준일이 언제냐는 질문과 행복e음시스템을 통해 조회되는 가장 최근 소득이라는 다산콜센터와 똑같은 답변이 반복되고 있다. 자영업자는 국세청 자료로 소득을 산정하는데, 2018년 소득이 가장 최신 자료다. 2018년 소득 기준으로, 2020년 코로나19 피해를 지원한다. 가구 기준이므로, 주민등록상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실업급여나 다른 복지혜택을 받고 있으면 탈락이다. 이 심사 때문에 최소 일주일 걸린다는 지급일은 점점 늦어지고 있다. 월급명세서를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알바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들을 가족으로 두고 있다면 정확한 가구소득을 알 수 없다. 대구는 특고노동자들을 위한 재난긴급생활비를 경총이 주관해서 지급하고 있는데, 5일 이상 노무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노무 미제공 사실확인서를 받아오라 했다. 퀵 기사로 일하는 우리 조합원은 사무실에 확인서를 떼어 달라 했지만 거절당했다. 화가 나서 경총에 전화했더니 본인이 쉬고 싶을 때 쉬는 대리기사, 퀵 기사 등은 해당이 안 된다고 했다. 홍보물에는 특고노동자, 프리랜서 지원이라고 박혀 있었다.

코로나19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하겠다고 밝혀 주목받은 전주시도 상황은 비슷하다. 당초 5만명에게 52만7000원씩 지원하기로 했지만, 신청은 3만9000여명에 불과했고, 1만8000명이 탈락해 2만1000여명만 지원을 받았다. 어떻게 신청하는지 몰라 포기한 노인, 건강보험득실확인서와 소득 감소 확인서류 등을 떼기 위해 관공서를 전전하다 지친 시민들은 복지 사각지대로 몰리게 될 것이다. 공지되지 않았던 근로계약서를 들고 오라고 한 공무원에게는 주민이 욕설을 퍼부었는데, 공무원들의 감정노동과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국민의 수치는 기록되지 않는다.

진짜 불쌍한 사람에게만 지원하자는 정치인과 관료들은 스캐너와 프린터가 없어 필요한 지원을 포기한 적이 없을 것이다. 정부 정책을 잘 알 것이고, 모르면 검색을 통해 정보를 취득할 능력도 있다. 선별복지를 신청할 필요가 없으니 주민센터의 아비규환을 알 리 없다. 반면 생활지원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공고문을 읽는 것 자체가 벽일 수 있다. 디지털 중심의 복지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전통적인 문해력과 정보 격차의 문제를 넘어 디지털 문해력과 디지털 불평등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어떤 이들은 오전 9시와 오후 6시 사이에 관공서를 드나들 시간이 없다.

애초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조건 없이 모두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제안됐다. 그런데 선별적 재난수당에 기본소득 명패를 붙여 본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 모두에게 준다고 끝나는 문제도 아니다. 최근 정부·여당은 긴급재난지원금을 온 국민에게 지급하기로 했는데, 자발적 기부를 하자는 조건을 달았다.

기본소득의 또 다른 가치는 부자들의 자발적 기부가 아니라 정의로운 과세를 통해 주권자의 삶을 보장하는 데 있다. ‘재원은 정의롭게, 지급은 보편적으로, 국민은 존엄하게’라는 기본소득의 본래 가치를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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