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사진)이 구속됐다. 양 전 회장은 직장 내 ‘갑질’로 알려졌지만, 이전에 여성의 고통을 팔아 수십억원대 수익을 낸 사람이었다. 양 전 회장은 불법촬영물을 올리는 헤비업로더를 관리하며 웹하드업체를 운영했다. 피해촬영물을 걸러내야 할 필터링업체, 피해자에게 돈을 받고 피해촬영물을 삭제하는 디지털 장의업체까지 한통속이었다.
성착취를 조직적으로 산업화한 이른바 ‘웹하드 카르텔’.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 대표의 첫번째 싸움 상대였다.
![서승희 “그들은 결국 모두 처벌받을 것이며 우리는 결국은 이길 것이다.”[플랫]](https://img.khan.co.kr/news/2020/04/30/2020042201002635800209021.jpg)
양 전 회장이 구속되기까지 웹하드 카르텔을 추적한 건 한사성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2017년 디지털 장의사 리스트를 만들다 필터링업체·웹하드업체의 주소지가 모두 같다는 걸 발견했다. 핵심인물 양 전 회장을 추적해 2018년 2월 경찰에 고발했다. 언론에 알리고 국민청원을 하며 구속까지 이끌었다. 이후 국내 웹하드업체와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 성착취물 사이트, 두 축을 중심으로 신고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며 피해촬영물을 주로 유통하던 곳은 대다수 폐쇄됐다. 지난 2일 서울 동작구 여성플라자 내 한사성 사무실에서 서 대표를 만났다.
서 대표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과거 디지털 성범죄와 맥락이 같다고 봤다.
“소라넷, 웹하드 카르텔, 텔레그램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국산야동’이라며 실존하는 여성의 성착취 피해촬영물을 봐온 역사가 20년이 넘었습니다.”
과거 웹하드 상위 10위 콘텐츠엔 늘 ‘국산야동’이 있었다. 소라넷과 비슷한 형태로 운영되는 불법 성착취물 사이트도 200여개가 있었다. 서 대표는 “말도 안되게 많은 양의 피해촬영물이 ‘당연하게’ 유통되고 있었다”며 “깊게 뿌리내린 디지털 성범죄는 시간이 지나며 플랫폼이나 방식만 달라져왔다”고 했다.
서 대표는 피해촬영물의 이용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가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7년부터 피해촬영물을 구매하거나 보려는 이들을 처벌하는 ‘소지죄’ 신설을 요구해왔다. 수요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수요는 여전하며, 피해촬영물을 공급해 돈을 버는 구조도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피해촬영물을 보려는 이들에게 ‘그 행위는 성폭력이자 범죄’라고 정의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범죄로 규정되면 범행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피해자의 불안도 덜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성착취를 ‘취향’으로 용인해온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피해촬영물에는 실제로 피해 입은 여성이 존재하지만, ‘국산야동’이란 범주의 콘텐츠 정도로 여겨졌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성범죄는 심각성에 비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한사성이 끈질기게 쫓은 양 전 회장도 구속을 앞두고 ‘엽기 갑질’로 주목받았고, 웹하드 카르텔의 성착취는 부수적 문제처럼 다뤄졌다. 그는 2018년 상습폭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가 2019년 7월이 돼서야 웹하드 카르텔 관련 혐의로 기소됐다.
서 대표는 “피해자에 대한 낙인도 디지털 성범죄가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서 조주빈 등은 피해자를 협박해 성착취물 촬영을 강요했다. 신상정보와 함께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에 피해자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여성의 모든 성적 행위가 사회에서 단죄받아 마땅한 일이 되다보니 협박의 빌미가 됩니다. ‘문란한 여성’으로 낙인찍히면 공동체에서 온전히 살아가기 어려운 현실에서 가해자들에게 협박거리는 무궁무진하죠.”
디지털 성범죄와의 싸움이 ‘승리하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서 대표는 “(삭제) 버튼을 누르듯 한 번에 범죄를 종식시킬 순 없지만, 갈수록 텔레그램 등으로 음지화되고 결국 주류의 문화 속에 더 이상 용납되지 않도록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엔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사업자가 버젓이 성폭력과 성착취로 수억원을 벌었다. 하루에도 수십개씩 올라오는 ‘국산야동’을 두고 아무도 성폭력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싸우는 동안 조금씩 달라졌다. 성착취물 접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범죄의 총규모는 줄어들고 있다.
“그들은 결국 모두 처벌받을 겁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변화를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변화를 만들어 갈 거예요. 결국은 이길 겁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발견한 60여개 대화방의 참여자를 모두 더하면 26만여명.
— 플랫 (@flatflat38) April 28, 2020
“여성을 재화 취급하고 흥밋거리로 소비하는 문화가 남아있다면 디지털 성범죄는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https://t.co/Ai6wZauj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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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기자 hjin@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