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기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20세기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일어난 기근 사례를 통해 도출한 결론이다.
![[편집국에서]한 아이도 울게 해서는 안된다](https://img.khan.co.kr/news/2020/04/30/l_2020050101000043400299311.jpg)
1983~1985년 아프리카에서는 가뭄으로 흉년이 들었다. 에티오피아 북부 지역 주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곡물 가격이 평년의 3배로 폭등했고, 100만명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 시기 에티오피아는 전체적으로 곡물 생산량에 큰 변화가 없었다. 사태 직전 1982년 에티오피아 곡물 생산량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1983년과 1984년 곡물 생산도 평년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 나라의 정치가와 관료들이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출신 대통령은 국내총생산의 46%를 군사비로 지출하면서도 가난과 배고픔을 호소하는 국민들을 구제하는 일에는 소홀했다.
같은 시기 아프리카 중부 보츠와나에서도 식량난이 발생했다. 곡물 생산이 평년의 25% 수준으로 격감했다. 에티오피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하지만 민주정부가 수립된 보츠와나에서는 굶어 죽은 사람이 없었다.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일자리를 제공한 덕분이었다. 농업 생산력이 미약하던 시대에는 가뭄이 불가항력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인재(人災)나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가 대기근과 다를 바 없는 처지에 놓였다. 국제 분업 시스템이 붕괴되고 글로벌 경제가 곤두박질치면서 기업 부도와 노동자 해고가 속출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중소·중견 기업은 물론이고 수출 대기업과 거대 항공사까지 경영난에 봉착했다. 식당과 마트, 노래방, PC방, 헬스클럽, 미용실 등 거의 모든 자영업자가 고객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감이 끊긴 여행업계 종사자, 문화예술계 프리랜서 등은 이미 극한의 생활고를 겪고 있다. 운 좋게 직장에 붙어 있는 노동자들도 정규직은 3명 중 1명, 비정규직은 3명 중 2명의 급여가 줄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경제 전시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은 이제 시작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말쯤 전 세계적으로 다시 한번 코로나19가 대유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려면 앞으로 1년은 더 걸린다고 한다. 코로나19에서 언제쯤 해방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짐작조차 어렵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힘들지만 경제가 어려울 때는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처지라 결혼이나 출산, 자식 교육 등 미래 설계는 꿈도 꾸지 못한다.
민주주의가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통치’(에이브러햄 링컨)라면,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데이비드 이스턴)이다. 둘을 합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란 시민의 뜻을 받들어 시민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자원을 배분하는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국채를 발행하고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벼랑에 내몰린 시민들을 살려야 한다. 국회도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나눠주기 위해 12조2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남긴 명언이 있다.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어린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일이다.” 우유 회사들의 단골 레퍼토리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처칠의 말이 회자되는 이유는 ‘우유’라는 값진 자원을 ‘어린이’라는 미래 세대에 배정한다는 의미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로 어른들이 힘들면 아이들은 더 힘들다. 경제난에 가정이 붕괴되면서 아이들이 버려지고, 차마 지면에 옮길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아동학대와 자녀살해가 빈발하고 있다.
며칠 지나면 어린이날이다. 단 한 명의 어린이도 울게 해서는 안된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 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마음껏 꿈꾸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한 사회의 인적·물적 자원 배분에는 그 사회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비전과 철학을 담아야 한다. 국가 예산은 어린이를 보살피고 가르치는 데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배정해야 한다. 그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 인재를 육성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이 글은 유규오 교육방송 PD가 쓴 <민주주의-세계적인 석학들의 민주주의 강의>를 참고해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