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지난해 경기부진 영향으로 국내 대기업집단의 당기순이익이 절반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석유화학 등을 주축으로 하는 최상위 대기업집단들의 실적이 크게 악화되면서, 대기업들 간 경제력 격차는 다소 줄어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3일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에 따르면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그룹)은 올해 64개로 지난해보다 5개 증가했다. 소속 계열사수는 181개 늘어난 2284개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각종 공시의무가 부과되고,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에 대한 규제가 적용된다.
전체 대기업집단의 경영성과는 악화됐다. 지난해 미·중 무역갈등 등 대외 불안과 국내 내수 위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경기가 부진했던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해 말 결산기준 64개 대기업집단의 총 당기순이익은 48조원으로 전년대비 44조5000억원(48.1%) 감소해 반토막났다. 평균 당기순이익도 1조60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절반 줄었다.
최근 5년간 대기업집단 당기순이익 변동 추이. 공정위 제공
특히 반도체·석유화학 등 타격이 컸던 업종을 기반으로 하는 최상위 대기업집단의 부진이 컸다. 전년대비 당기순이익 감소폭은 자산 기준 재계 1위인 삼성(-19조7000억원)이 가장 컸고, 3위 SK(-14조7000억원)와 4위 LG(-3조5000억원)가 뒤를 이었다. 재계 2위인 현대차는 신차 출시에 따른 판매 증가와 환차익 발생으로 당기순이익이 3조8000억원 늘어 가장 많이 상승했다.
대기업집단의 총 매출액은 1401조6000억원으로 전년대비 20조4000억원 감소했다. 지난 2년 연속 나타난 증가세가 소폭 꺾였다. SK(-22조4000억원)와 삼성(-13조8000억원), 8위 GS(-5조5000억원) 순으로 매출 감소가 컸다. 현대차는 가장 많은 11조5000억원 늘었다.
최상위 대기업집단을 위주로 경영실적이 크게 악화되면서 상위 5개 그룹(삼성·현대차·SK·LG·롯데)과 나머지 그룹들 사이의 경제력 격차는 줄어들었다. 상위 5개 그룹은 전체 대기업집단 당기순이익의 68.5%, 매출액의 55.7%를 차지했다. 각각 전년대비 3.7%포인트, 1.4%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자산 대비 당기순이익 비중은 하위 30개 그룹이 상위 34개 그룹보다 높았다.
정진욱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브리핑에서 “5대 그룹으로의 (경제력)쏠림현상이 일시적인지 추세로 굳어질지는 지금 단계에서 판단하기 어렵다”며 “올해 쏠림현상 완화는 상위집단이 주력으로 하는 업종 불황의 영향이 컸기에, 향후 업황에 따라 쏠림현상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기업집단의 재무 상황은 전반적으로 악화됐다. 감소세를 보여오던 전체 대기업집단의 부채비율(자본총액 대비 부채총액)은 전년대비 3.9%포인트 늘어 71.7%를 기록했다. 금호아시아나는 회계기준 변경에 따라 항공기 운용리스가 부채로 인식되면서 부채비율이 364.8%포인트 상승해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교보생명보험과 KCC가 46.4%포인트와 44.8%포인트 상승해 뒤를 이었다.
최근 5년간 대기업집단 부채비율 변동 추이. 공정위 제공
자산총액은 2176조1000억원으로 136조4000억원 늘었지만 평균 자산총액(34조6000억원)은 6000억원 줄었다. 전체 대기업집단 자산에서 상위 5개그룹이 차지하는 비중(52.6%)은 1.4%포인트 감소했다.
넷마블은 코웨이 인수 등으로 자산이 2조8000억원 늘어 재계순위가 57위에서 47위로 가장 많이 올랐다. 카카오은행 등 26개 계열사를 추가하며 가장 적극적으로 기업 인수를 추진한 카카오는 32위에서 23위로 상승했다.
재계순위 1~8위는 전년도와 같았다. 삼성·현대차·SK·LG·롯데·포스코·한화·GS 순이다. 지난해 10위였던 현대중공업은 농협과 자리를 바꿔 9위로 올라섰다. CJ(13위)와 LS(16위)도 한계단씩 상승했고, 한진(14위)과 부영(17위)은 한계단씩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