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로이터연합뉴스
‘포퓰리즘의 신’이라 불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66)은 코로나19가 촉발한 위기의 강을 건널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터키 경제가 흔들리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전례 없는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터키의 경제 성적표는 최악의 상황을 가리키고 있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터키 경제 성장률을 마이너스 5%로 전망했고, 인플레이션은 12%, 실업률은 17.2%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터키는 2018년 8월 금융위기를 겪었다. 당시 미국과 관세 갈등 등으로 대미 관계가 악화하면서 터키 통화인 리라화 가치가 폭락했다. 지난 7일 국제 외환시장에서 리라는 달러당 7.2리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18년 때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터키 중앙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하한 데다 코로나19로 경제활동에 타격을 받은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이전에도 터키 경제 상황은 좋지 않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시리아 북부를 침공해 국제적 비판을 받는 한편 2019년 지방선거에서 앙카라와 이스탄불에서 처음으로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이 패했다. 코로나19로 위기가 가려지는 듯했지만, 경제지표가 발표되고 감염증이 확산되자 여론이 바뀌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부터 총리로 재임하다가 2014년 터키 역사상 첫 직선제 대선에서 승리, 2017년 개헌으로 2033년까지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그 이듬해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해 ‘21세기 술탄’으로 불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6일 에르도안 대통령이 경제를 취약한 상태로 내버려둬 집권 이후 사상 큰 도전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이스탄불 경제연구소의 지난달 23일 여론 조사에 따르면 AKP 지지율 7%가 빠졌고, 지지자 4명 중 1명은 정부의 코로나19 통계 발표를 믿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위기를 맞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선택은 ‘봉쇄완화’다. 터키 정부는 11일부터 쇼핑몰, 이발소 등이 문을 열고 주요 공장들도 가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경제 바퀴는 굴러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이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요구를 거부했다. 하지만 경제활동 재개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10일 현재 터키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3만8657명이고, 사망자는 3786명이다. 지난달 말부터 확진자나 사망자 모두 감소세를 나타내긴 하지만 연일 1000명 넘게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일일 사망자도 50명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이미지 세탁’에 나섰다고 비영리 온라인 매체 더컨버세이션이 지난달 23일 보도했다. 터키 정부는 자국 내 코로나19 피해가 극심한데도 영국을 포함해 약 30개국에 보호장비를 지원했다. 보호장비가 담긴 상자에는 터키 로고와 에르도안 대통령의 서명이 들어가 국제사회를 향한 ‘소프트 파워’를 키우는 홍보에 적격이라는 것이다. 터키 공화국에서 ‘자비의 실천’은 미덕으로 여겨져 국내 여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또한 “서방에 원조를 보내는 터키”라는 이미지는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지위가 높아지길 바라는 터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터키 의료협회는 자국 내 보호장비가 부족하다는 성명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또한 영국에 도착한 터키의 보호장비는 품질이 낮아 영국 의료현장에 실제 보급률은 매우 낮다고 영국 BBC가 지난 7일 전했다.
‘이미지 세탁’ 시도가 표면적으로는 긍정적 효과를 내는 것 같지만 실제 터키인들의 고충은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19 감염 위기는 높아지는데 방역은 소홀하고 경제 상황은 최악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위주의 행보도 한층 강화됐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터키에서 ‘가짜뉴스’ 등을 이유로 언론인을 포함해 약 400명이 구금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