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시 재난 긴급생활비를 신청하러 갔던 A가 나에게 카톡을 보내왔다. 신청하면서 몹시 화가 났다고 했다. 담당자와 직접 대면하는 방식이니까 공인인증서나 액티브X에 고통받을 일도 없었을 텐데, 평소 예민한 성격인 그가 무엇에 불편을 느꼈나, 우선 들어나 보기로 했다.
A는 자신이 찍었다는 신청서 양식의 사진을 보내면서 나에게 잘못된 부분을 찾아보라고 했다. 신청서에는 ‘서울시 재난 긴급생활비 신청서’라는 제목이 있고, 그 밑에 세대주 정보와 가족사항을 적는 난이 있고, 신청사유 ‘코로나19로 인한 생계 위기’라고 적혀 있고, 타 제도의 지원을 받았는지 여부를 표시하는 난이 있었다. 어디 오타라도 있나, 띄어쓰기라도 잘못되었나 하고 살펴보다가 도무지 찾기 어려워서 “아니, 선생님, 그래서 뭐가 문제입니까” 하고 묻자, 그는 가족사항란(사진)을 자세히 보라고 했다.
다시 살펴보다가,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A가 평소에 유별난 성격이기는 하지만 이건 잘못된 것이 맞았다. 내가 “야, 이게 잘못된 거네”라고 말하려는데, A는 “내가 1990년대면 이해하겠는데 2020년에도 세대주는 무조건 남성일 것이라고 적어둔 공문서를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넌 이게 안 보이냐”라며, 나의 무지몽매함을 비판했다. 그러고는 내가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도 주지 않고 다시 이어서, “이건 코로나 때문에 지급하는 지원금에 대한 신청서니까 2020년에 새롭게 만든 문서일 거란 말이야. 그런데도 이렇게 적어둔 건 정말 잘못된 거잖아”라고 말했다. 사실, 그의 말이 다 맞았다. 1990년대든 2020년이든 여전히 남성이 세대주로 되어 있는 집이 상대적으로 많겠으나, A부부처럼 여성이 세대주로 된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의 재난 긴급생활비 신청서에는 그들이 이름을 적을 곳이 없는 것이다.
A가 담당 공무원에게 “저어, 이건 좀 잘못된 것이 아닌가요?” 하고 묻자, 그 담당자는 웃으면서 “옛날엔 당연하게 다 그랬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안 그런가 보네, 허허허” 했다고 한다. A는 더 하고 싶은 말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처’라는 글자를 지우고 ‘부’라는 글자를 새로 적고, 거기에 자신의 남편 이름을 넣었다. 어쩌면 이 역시 재난이다. 2020년에도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적을 데가 없는 A와 같은 여성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사람은 자신을 규정할 언어를 필요로 한다. A 역시 누군가의 ‘처’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대주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개인이다. 그러한 삶을 서울시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단단하게 규정해야 하고, 적어도 무너뜨리지는 않아야 한다.
많은 공공기관들이 지금도 ‘○○신청서’와 같은 문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쩌면 별 문제 없이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양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 가장 간편한 방식이다. 그러나 그 양식과 언어들은 시대에 따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따라, 계속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찾은 공공기관에서 다시 한 번 일상의 재난을 경험해야 하는 A들의 자리가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