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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의 ‘서사’라는 군더더기

입력 2020.05.21 03:00

수정 2020.05.2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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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 주변이 미성년자의 범죄를 다룬 드라마로 시끌벅적하다. 모범생 주인공이 이리저리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범죄를 저지른다는 설정이다. 이러한 범죄 관련 작품들로 시끄러운 이유는 해당 작품이 n번방 사건을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만들고, 나아가 해당 작품의 주인공이 자칫 n번방 사건의 범죄자들에게 그럴듯한 서사로서 변명을 만들어준다는 우려 때문이리라.

이융희 문화연구자

이융희 문화연구자

창작품에서 범죄자에게 서사를 주는 것이 옳은가 아닌가는 창작자와 독자, 비평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논의되었다. 조너선 갓셜의 책 <스토리텔링 애니멀>에 나오는 일화다. 심리학자 마르쿠스 아펠이 2008년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하나 발표했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사람들이 정의를 믿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이 부조리한 탓에 드라마와 코미디를 즐겨 보는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와 뉴스를 즐겨 보는 사람들에 비해 세상이 정의롭다고 믿는 비율이 높았다.

이것은 우리가 접하는 창작물에 ‘서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소재나 배경을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것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제는 작품의 서사에서 나온다. 인물과 사건이 갈등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변화를 겪는지,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가 어떤 관점에서 독자들에게 편집되어 전달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문제는 대중문화가 아니다. 대중문화는 결국 대중의 인식과 요구를 거울처럼 보여준다. 대중문화는 결국 범죄자에게 부여되는 서사들, 그리고 훈장처럼 주어지는 수식어가 만연한 현실을 뚜렷이 비추고 있을 뿐이다.

최근 신상공개가 줄줄이 이어지는 흉악범죄자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자. 흉악범죄자가 두 얼굴을 가지고 있고, 문예부장을 했으며, 모범생이었다는 수사가 넘쳐난다.

그러한 수사는 왜 만들어지는가? 해당 수사는 범죄자의 일상을 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 이만 한 범죄를 저질렀어. 놀랍지?’라고 소식 전달 과정에서 감정적 충격을 주어 청자로 하여금 감정적 동요를 만들어내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 그러한 충격은 낯선 간극을 만들어낸다. 범죄자들이 ‘천재적’이거나 ‘악마’가 되고, 일상의 우리와는 마치 다른 종인 것처럼 여겨진다. ‘평범했다’ ‘모범생이었다’ 같은 수사는 범죄자를 평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범죄자를 개성화한다. 결국 수사는 범죄자를 ‘서사’라는 감옥으로 일상에서 배제한다.

창작품은 우리의 공포감을 가상의 적, 이미지너리 에너미(imaginary enemy)로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테면 바이러스와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좀비’라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앞서 상술한 실험처럼 해피엔딩은 오히려 정의의 승리를 보여준다. 최근 유행하는 히어로물의 영웅들이 끝끝내 승리를 거두는 것처럼. 하지만 일상은 그렇게 원인과 결과가 뚜렷하지 않고, 프롤로그와 엔딩도 명확하지 않다. 피해자의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며 범죄자들에 대한 처단 역시 단시간에 깔끔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죗값은 명사의 형태가 아니라 동사의 형태로 존재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하나둘의 범죄자를 단죄한다고 해서 그 범죄가 일어나는 구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며 이 세상에서 똑같은 범죄는 언제나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수식어를 통한 범죄자의 배제작업은 기사를 보는 사람들에게 거짓 안도감을 주는 것에 불과하다. 일상은 어떠한가. 범죄는 아직 만연하고 범죄자는 우리 근처에 있다. ‘악마 같은, 천재적인, 모범생이었던, 가난한 삶을 살았던,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던,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던….’ 이렇게 스테레오 타입으로 부여되었던 수식어들을 들어내면 범죄자가 남는다. 그 깔끔함이 우리가 현실의 사건과 사람을 더 올바르게 바라보게 만들고 ‘그다음’으로 넘어갈 힘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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