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재정지출은 비용이 많이 들지만 장기적인 경제적 손실을 막고 더 강력한 회복을 가져올 수 있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얼마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파월 의장이 한 얘기다.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1차 충격에서 특히 금융시장은 각국의 선제적인 대응과 정책공조로 일단 진정 국면이다. 하지만 팬데믹의 향방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하고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간의 괴리, 디커플링 현상은 오히려 더 심화되는 양상이다. 국내에서도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재정 및 통화 당국 간 정책공조에 대한 요구도 늘어나고 있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정책공조의 필요성은 현 통화정책의 한계에서 시작된다. 통화정책은 전통적이든 비전통적이든 금리를 통해 작동한다. 즉 장단기에 걸쳐 금리를 낮춰 소비와 투자의 조달비용을 낮춤으로써 수요를 진작시킨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정책금리가 실효하한에 가까워지고, 장기 금리의 하락 여지가 제한적인 경우에는 통화정책이 금리 경로를 통해 수요를 진작시키기 어렵다. 지금은 재정정책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재정정책은 경기침체기에 더욱 효과가 크다. 특히 감세나 이전지출보다 재정투자의 승수효과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프라, 재생에너지 및 차세대 기술 등 우리 경제의 총요소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재정 확대가 중요한 이유이다. 초저금리 환경은 부채 기반 재정지출(Debt-Financed Fiscal Program)을 위한 조달비용을 낮추고, 부채 확대의 부담을 덜어준다. 무위험금리가 자본수익 및 추세적 성장률보다 낮게 유지된다면, 재정적자가 확대되더라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율은 하락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긍정적인 시나리오일 터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우려가 존재한다. 우선, 대규모 확장재정에도 금리와 추세적 경제성장 간 우호적인 관계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보장이 없다. 국가부채 수준이 높아지면 부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발생한다. 게다가 적자재정을 메우기 위해 추후 세금이 인상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된다면 재정지출의 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도 재정건전화 논쟁을 초래할 수 있다. 적정국가채무비율을 둘러싼 찬반론이 아니더라도, 재정의 부채조달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통화 기반 재정정책(Money-Financed Fiscal Program)이다. 전통적인 세수 증대나 국채 발행 대신에 통화량의 항구적 증발을 통해 재원이 조달되는 확대재정정책을 의미한다. 소위 헬리콥터머니다. 발권력을 동원한 재정지출은 공공부채의 증가도, 추가적인 조세부담도 초래하지 않는다. 물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중장기적으로 지속적인 물가 앙등 또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막기 어렵다는 견해이다. 우리와 같은 개방경제에서는 외환시장의 불안정성도 커질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 붕괴와 무분별한 재정 확대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와 같은 비상상황에서 이 정책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한국은행 내에 긴급재정지원기구나 기재부 특별계정을 설치하여 재정지출을 위해 사용하도록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통화정책이 한계에 봉착하고, 물가상승률(또는 실업률이나 GDP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이 정책목표를 체계적으로 하회하는 상황에서만 작동하도록 규정한다. 통화당국과 재정당국이 명시적인 정책목표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을 진다. 또 사전에 정의된 명확한 출구전략이 존재해야 하고, 재정지원의 규모는 중앙은행이 결정한다. 이 제도는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유지하고, 무분별한 재정 확대의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통화당국과 정부의 정책공조가 절실한 경제 상황에서 신뢰할 만한 정책공조 프레임워크를 제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