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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갈라서기’로 70년 전쟁 마침표 찍자

입력 2020.05.28 03:00

수정 2020.05.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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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코로나19 이후의 국제 질서를 미·중 신냉전 구도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원맨쇼’가 아니다. 미국 백악관과 국방부가 지난 21일 의회에 제출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는 미·중 갈등이 미·소 냉전기 이상으로 장기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1979년 미·중관계 정상화 이후 40년간 중국의 발전이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났다”는 대목에서 미·중관계를 송두리째 부정하고픈 미국 집권세력의 인식이 드러난다. 굴기하는 중국을 냉전시대 ‘죽(竹)의 장막’ 안으로 되몰아 봉인하겠다는 기세다. 미국의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중국봉쇄 기조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서의동 논설위원

서의동 논설위원

미국은 반중(反中) 대열에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인도 등을 세우겠다고 한다. 가장 시달릴 나라는 당연히 미·중 세력권의 경계에 놓인 한국이다. 미국과 동맹이지만 경제에서 중국 의존도가 큰 한국은 미·중 충돌 때마다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것이다. 한국이 참가한 일대일로 사업도 미국 견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경제에서 중국 비중을 낮춘다 한들 지리적으로 이웃한 중국의 자장(磁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충돌이 임계치를 넘어서면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 외교정책의 주요 목표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평화체제 구축’이다. 그런데 북핵문제의 해결은 미·중 패권경쟁하에서는 더 요원해질 것이다. 지난 3년간 문재인 정부가 북·미 비핵화 협상을 위해 진력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외교 목표에 북핵문제가 들어 있는 한 ‘우리 운명을 우리가 결정’하기 어려워지는 셈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문 대통령은 올 초 북·미 협상과 별개로 남북협력을 증진시키겠다고 했다. 북핵과 남북평화를 분리하겠다는 결단이다. 통일부는 5·24 조치의 실효(失效)를 확인했고, 북한 사람을 만날 때 신고하지 않아도 되도록 법을 바꾸기로 했다. 전향적 조치들이지만, 이 참에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규정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남북은 1991년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했다. 이 규정은 ‘남북이 결국 하나가 돼야 한다’는 이상을 담았을 뿐, 상대방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남북 쌍방이 별개 국가라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는 과정이 생략된 것은 남북문제의 ‘과잉 정치화’를 유발했다.

이런 지적이 타당하다면 이제 ‘1민족 2국가 체제’를 인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남북이 동·서독처럼 상호체제 인정, 내정 불간섭, 불가침 등을 담은 기본조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종전선언’도 미·중을 기다릴 것 없이 남북이 먼저 하면 된다. 조약에 이어 서로를 적대시하는 제도와 규정들을 철폐하면 남북의 ‘갈라서기’는 마무리된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하고 공존하게 되면, 한국의 운신의 폭도 넓어진다. 남북 간 충돌위험이 감소하면 미국과 방위비 분담금 때문에 옥신각신할 일도, 값비싼 첨단무기를 과잉구매해야 하는 부담도 줄어든다. 북한을 ‘유격대 국가’라고 비판하지만, 한국도 과도한 군비 탓에 사회보장 지출을 늘리기 힘든 비정상국가가 아닌가. 북한 지도자의 부재에 온 나라가 뒤집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한 민족이 두 나라가 되는’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는 탓에 저항감이 클 것이다. 하지만 별개 국가로 갈라섬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정념의 거품이 걷힌다면 교류협력에 대한 부담감도 줄어들 것이다. 통일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사실상의 통일’로 나아갈 길이 열릴 수 있다. 북·미 협상도 당분간은 당사자들에게 맡겨두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한 달 뒤면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된다. 남북은 1949년부터 38선 일대에서 수천명의 남북군인이 중화기를 동원한 ‘작은 전쟁’을 치르며 전면전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2차 세계대전 후 4개국에 의해 분할 점령된 오스트리아가 통일독립을 달성한 것과 대조적인 과정이다. 국제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지만, 결국 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남북 내부의 동학(動學)이었다. 이는 거꾸로 한반도 평화도 남북 내부의 동학에 의해 상당 부분 달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 동학은 서로의 실체를 쿨하게 인정하는 데서 탄력이 생길 것이다. 70년 전쟁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도 남북의 ‘갈라서기’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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