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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5전쟁터에서 아군과 적군 안 가리고 공격한 ‘보이지 않는 적’

입력 2020.05.28 20:31

수정 2020.05.2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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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응빈 교수

‘괴질’로 불린 유행성 출혈열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6)6·25전쟁터에서 아군과 적군 안 가리고 공격한 ‘보이지 않는 적’

1951년 첫 감염 나온 이후 그해에만 미군 환자 1000여명 발생
미 의료진, 원인 몰라 비상…서로 ‘상대가 생물학전 감행’ 의심
1978년에야 병원체 정체가 들쥐 몸속 바이러스라는 게 밝혀져

1953년 10월호 ‘미국공중보건학회지’에 실린 한 논문에는 제목 위에 이런 내용의 문구가 있다. “이 논문에서는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특이한 감염병을 다룬다.” 그런데 정작 이 질병은 미국 본토에서 발생한 것도 아니었고,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왜 이 병이 미국인의 관심사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자국의 젊은이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전장에서 이 괴질로 쓰러져갔기 때문이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해를 넘기며 장기전으로 들어설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1951년 봄부터 전황은 38선을 중심으로 교착 상태에 놓였다. 한반도 문제를 더 이상 군사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쌍방은 1951년 7월10일 첫 공식 휴전회담을 시작했다. 양측은 별도의 협의가 없는 한 군사작전은 계속한다고 하였다. 더욱이 남북 간 경계선이 전쟁 전의 38선이 아니라 정전 시점의 군사접촉선으로 합의되었기 때문에 회담 종료일(1953년 7월27일)까지 전선에서는 치열한 혈전이 계속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주인이 바뀌는 고지 쟁탈전에서 엄청난 인명 피해는 불가피했다. 설상가상으로 이 참혹한 전선에 정체 모를 병마까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병마의 정체

글머리에 소개한 1953년 논문에서는 이 감염병을 새로운 ‘유행성 출혈열’이라고 보고했다. 병명 그대로 환자에서는 고열과 안구 충혈, 구강 출혈 등의 징후가 나타났다. 1951년 초여름 전선에서 첫 감염이 나온 이후로 그해에만 1000여명의 미군 환자가 발생했다. 미국 의료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1940년대 일본과 러시아(구소련) 과학자들이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에서 발병 보고를 한 적은 있었지만, 미국 의료진에게는 난생처음 보는 ‘신종감염병’이었기 때문이다.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환자가 끊이지 않았다. 병마의 공격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았기에 서로 상대가 생물학전을 감행한다고 의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늦봄(5~6월)과 늦가을(10~11월)에 환자가 급증했다. 나머지 기간에는 산발적으로 발병 사례가 나타났다. 그러나 병원체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고, 그렇게 사반세기가 흘러갔다.

1978년 마침내 그 괴질의 원인이 들쥐의 몸 안에 살고 있는 바이러스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한국의 바이러스학자 이호왕 박사(1928~)가 한탄강 유역에 서식하는 등줄쥐의 폐 조직에서 문제의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곧이어 이 바이러스는 ‘한탄바이러스’로 불리게 된다. 과거에는 새로운 바이러스에 그것이 처음 분리된 장소 이름을 붙이는 것이 생물학계의 관례였다.

한탄바이러스의 발견을 계기로 진단검사가 가능해지자 한탄바이러스 또는 이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세계 도처에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1981년에 이르러서는 이런 바이러스들을 하나로 묶어 ‘한타바이러스’라는 이름의 ‘속’으로 분류하였다. 속은 중·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에도 나오는 생물 분류 체계(종-속-과-목-강-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분류 단위이다. 한타바이러스 속에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종과 그렇지 않은 종이 섞여 있다. 한때는 인체 병원성 한타바이러스종은 구대륙에 국한되어 분포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1993년까지는 그랬다.

■신놈브레바이러스

1993년 5월, 미국 뉴멕시코주의 시골 지역에서 건강한 운동선수가 갑자기 고열과 호흡 곤란을 겪었다. 나중에는 토혈까지 했고 끝내 숨지고 말았다. 곧이어 그의 애인도 같은 증상으로 목숨을 잃었고, 일주일 동안 이곳에서 네 명의 환자가 더 나왔다. 이후에도 일주일에 한두 건씩 이런 질병이 발생했고, 안타깝게도 환자 절반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의문의 질병은 유타와 애리조나, 콜로라도 등지로 퍼져나갔다. 급기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나섰고 첫 희생자가 나온 지 약 한 달 만에 원인 병원체가 한타바이러스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를 ‘포코너즈 바이러스’라고 명명했다. 포코너즈(Four Corners)란 콜로라도와 유타, 애리조나, 뉴멕시코주가 모두 맞닿아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별칭이다. 이 바이러스가 거의 동시다발로 네 개 주를 휩쓸었다는 점에서 작명에 수긍이 간다. 하지만 그 지역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주민들은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포코너즈에 바이러스 이름이 붙게 되면 관광 명소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거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결국 이들의 항의가 받아들여져, 이 바이러스는 ‘신놈브레바이러스’로 개명되었다. ‘신(Sin)’과 ‘놈브레(Nombre)’는 스페인어로 각각 ‘없는’과 ‘이름’이라는 뜻이다. 결국 ‘무명 바이러스’라는 것이니, 이름치고는 상당히 우스꽝스럽다. 참고로 2015년부터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나서 새로 발견된 바이러스를 명명할 때, 지역명을 피하고 과학적으로 타당하고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이름을 부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보유숙주

한타바이러스는 등줄쥐 등을 통해 사람에게 전염된 바이러스이다. 이러한 바이러스는 동물 안에 기생할 때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다가 낯선 숙주인 인간에게 옮겨져서는 고열과 구강 출혈을 동반하는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킨다. 위키미디어

한타바이러스는 등줄쥐 등을 통해 사람에게 전염된 바이러스이다. 이러한 바이러스는 동물 안에 기생할 때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다가 낯선 숙주인 인간에게 옮겨져서는 고열과 구강 출혈을 동반하는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킨다. 위키미디어

수많은 미생물과 인간은 같은 세상을 사는 ‘밀당’ 속 애증 관계
코로나 등 신종 감염병 사태는 이런 관계에 균열이 있다는 신호
K바이오가 글로벌 방역체계의 새로운 에티켓을 정립하길 기대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생명체, 숙주 안에서만 증식할 수 있는 절대기생체이다. 하지만 많은 바이러스가 동물 숙주에서는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한타바이러스도 그런 경우이다. 설치류 숙주와 한타바이러스는 수백만년에 걸쳐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공존할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 이렇게 병원체를 지니고 있지만 해를 입지 않고 감염원으로 작용하는 숙주를 ‘보유숙주’라고 한다.

한타바이러스의 보유숙주는 크게 두 부류, ‘쥐과’와 ‘비단털쥐과’로 나뉜다. 생쥐와 등줄쥐, 시궁쥐 등이 속한 쥐과 설치류는 주로 구대륙에 서식한다. 반면 사향쥐와 햄스터, 나그네쥐 같은 비단털쥐류의 활동 무대는 신대륙이다. 당연해 보이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사실은 숙주가 비슷할수록 바이러스도 유사하다는 점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바이러스가 서식 환경(숙주)에 적응해왔다는 얘기이다. 이런 과정에서 숙주에 따라 바이러스의 특성도 조금씩 달라졌다. 예컨대 치사율 면에서 신대륙 바이러스(35~50%)가 구대륙 바이러스(1~15%)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다. 또한 구대륙과 신대륙 한타바이러스는 각각 콩팥과 허파에 주로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근거하여 두 감염증을 공식적으로 각각 ‘신(腎)증후군 출혈열’과 ‘한타바이러스 심폐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유행성 출혈열 바이러스는 보유숙주의 대소변과 침을 통해 환경으로 배출된다. 따라서 야생 설치류가 횡행하는 지역일수록 바이러스가 많아진다. 전쟁 영화의 단골 장면인 덤불 속 매복과 포복 등은 보병 전투의 기본이다. 6·25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벌이던 군인은 한타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1993년 미국 남서부에는 큰 풍년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주된 원인은 페루와 칠레 연안에서 일어나는 해수온난화 현상인 ‘엘니뇨’ 때문이었다. 풍부해진 먹이 덕분에 들쥐의 수도 늘어났다. 그만큼 더 많은 배설물과 함께 바이러스가 주변 환경으로 퍼져나갔다. 한적한 농촌의 일상생활에서 접촉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감염병 발생 원인의 바닥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보유숙주 밖으로 나온 바이러스는 일정한 시간 내에 새로운 숙주를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이러스는 사멸된다. 그런데 숙주 갈아타기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낯선 숙주를 만날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물에서 유래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근본 이유가 바로 이 ‘낯섦’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해서 말하면, 우리 집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생전 처음 보는 곳이다.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빨리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다보니 그만 낯선 숙주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고 만다.

■‘K바이오’의 활약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감염병이 일상 뉴스가 되어버렸다. 2019년만 해도 1월부터 ‘홍역’으로 온 나라가 홍역을 앓았는데, 9월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라는 불청객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왔다. 그리고 사태를 수습할 여유도 주지 않고 코로나19가 맹공을 가해왔다. 직감적으로 ‘감염병의 시대’가 도래하는 듯하다.

우리는 미생물 세상에서 살아간다. 자연계에는 아직 우리가 접하지 못한 미생물이 무수히 존재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면 그들은 변화하고, 그러면 다시 우리가 영향을 받는다. 한마디로 끊임없는 밀당(밀고 당김) 속 애증 관계이다. 코로나19를 비롯한 신종감염병 사태는 이런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흔히 감염병을 미생물의 공격으로 여기지만, 생태학 관점에서는 공생 속에서 생겨나는 어쩔 수 없는 갈등으로 보인다.

우리로서는 병원성 바이러스와 마주치지 않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야외 활동이 잦아지는 봄가을이 되면, 보건당국에서 풀밭에 함부로 눕지 말라고 당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행성 출혈열처럼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지 않는 감염병의 경우에는 이 정도만 지켜도 감염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코로나19처럼 사람들 사이를 옮아가는 감염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용의주도한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감염이 뒤늦게 알려진 작년 12월, 국내 바이오업계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하고 진단시약 연구·개발에 이미 착수했다고 한다. 과거 사스와 메르스 사태 등을 극복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에서 비롯된 탁월한 예측과 판단 덕분이었다. 지난 1월 말에는 질병관리본부가 소집한 긴급회의에 준비된 상태로 참석하여 구체적인 대응 방안도 제안할 수 있었다. 때마침 WHO를 통해 코로나19의 유전정보도 공개된 상태였다. 정부도 긴급사용승인과 질병관리본부에서의 임상성능평가로 화답했다. 한국에서 개발한 코로나19 진단키트는 검사 6시간 이내에 98% 이상의 정확도로 감염 여부를 알아낸다. 현재 국내 아홉 개 바이오기업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긴급사용승인을 받아 전 세계에 코로나19 진단키트를 공급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상 속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와 마스크 쓰기 등이 ‘새로운 에티켓’이 되어가고 있다. 에티켓이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우와 장소에 따라 취해야 할 바람직한 몸가짐을 일컫는 말이다. 원래 표찰(티켓)을 뜻하는 옛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이 외래어가 지금의 의미를 가지게 된 이면에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있다고 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그는 귀족을 길들이고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여러 가지 궁중 예법을 만들어 이를 에티켓이라 했다고 전해온다.

말하자면 에티켓은 서슬 시퍼런 절대군주에게, 시쳇말로 찍히지 않으려면, 지켜야 했던 궁궐생활 규범이었다. 코로나19에 맞서고 있는 현 상황에서 묘한 동병상련을 느끼다가 생각이 발전한다. 새로운 에티켓은 단순히 개인 수준의 규범을 훨씬 뛰어넘어 글로벌 차원의 공조 전략이자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이 이런 시스템 구축 방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보인다. 한국이 입증된 바이오 역량을 결집하고 여기에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을 융합하여 글로벌 방역 체계, 즉 새로운 에티켓 정립에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6)6·25전쟁터에서 아군과 적군 안 가리고 공격한 ‘보이지 않는 적’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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