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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과 성장 사이에서

입력 2020.05.29 03:00

수정 2020.05.2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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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에 대한 처방만 있고 원인에 대한 고민이 없다. 정부의 포스트 코로나 경제 대책을 보고 난 느낌이다. 정부의 구상은 코로나19 재난으로 생긴 경제 침체를 ‘한국판 뉴딜’로 극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 침체는 재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재난의 결과에 대한 적기의 대응도 중요하지만, 재난의 근원을 놓고 사회 전반을 반성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아쉽게도 정부의 구상에서 자연의 지속적 파괴와 값싼 노동력에 기반하는 ‘경제발전’ 패러다임에 대한 진솔한 고민은 찾기 어렵다. 사업만 무성하고 성찰이 없다.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 대표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 대표

사회 일각의 비판 때문인지, 막판에 ‘그린 뉴딜’을 추가한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과 ‘그린’으로 정리되었다. 급히 불려온 그린 뉴딜이 과연 한국판 뉴딜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을까? 답은 뉴딜을 위한 그린인지, 그린을 위한 뉴딜인지에 달렸다. 다음의 질문으로 그린 뉴딜의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다. 정부는 그린의 관점에서 지금 첨예하게 논란이 되는 사업을 철회하거나 전면 재검토할 것인가? 삼척에서 건설 중인 2기의 석탄화력발전소,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일방적·짬짜미 공론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린 뉴딜을 다짐하는 정부가 그린을 부정하는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아는 법이다.

그린 뉴딜에 관여하는 관료와 전문가들의 내면은 그린인가? 그린으로 가려고 애쓰고 있는가? 녹색이 내면에 스며들면 자족, 절제, 검약, 단순과 같은 태도가 자라난다. 삶에서 소유보다 존재, 경쟁과 지배보다 협력과 공존, 효율과 이윤보다 안전과 생명, 성장과 독점보다 분배와 공유가 훨씬 중요함을 깨친다. 우리 안에 그린이 없으면, 그린 뉴딜에도 그린은 없다. 그린 뉴딜은 그린이 아니라 ‘그리드’(탐욕)에 끌려다니게 된다.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는 법이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 안 된다. 코로나19 재난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취약하고 불평등한지, 현재의 경제가 얼마나 자멸적인지 낱낱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한국판 뉴딜은 여전히 코로나 이전의 성장 패러다임에 매여 있다. 한국판 뉴딜의 일부로 편입된 그린 뉴딜이 이 강고한 패러다임을 극복하긴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속하려는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코로나19 재난으로 우리는 기후위기가 경고해온 성장의 한계와 그 운명을 조금은 앞당겨 실감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말자. 코로나19 감염으로 세상이 강제로 멈추었을 때 우리는 당혹과 두려움을 느꼈지만, 변화의 가능성도 보았다. 사라졌던 소중한 것들이 돌아오는 기쁨을 맛보며 ‘또 다른 세상’이 아직은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았다. 우리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세뇌하며 옥죄어온 성장 ‘이데올로기’다. 한번 자문해보자.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세상’에서 편안했나? 만족했나? 행복했나?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 바로 전환의 때다. 성장은 결국 절대다수의 삶과 자연을 먹이로 삼아 소수의 탐욕에 이바지한 주문이었음을 깨닫고 과감히 전환의 길을 선택할 때, 코로나19는 우리를 주술에서 풀어주는 ‘아픈’ 축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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