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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부답게 ‘일하는 국회’

입력 2020.06.02 03:00

수정 2020.06.0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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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가 4년의 대장정에 올랐다. 임기 시작과 개원일은 법에 정해져 있어 닻을 올리긴 했으나 언제 등원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국회 문은 아직 닫혀있어 행정부나 사법부 소속 공무원이 임기 시작과 동시에 일터로 출근해 본연의 업무를 시작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최대 의석 차 여대야소의 입법 지형이 다를 뿐 국회 개원 언저리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다. 개원을 앞두고 여야가 상임위원장 배분을 두고 벌이는 대치국면과 지각 개원 우려는 익숙한 풍경이다. 여야 모두 20대 국회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를 쓰고도 최악이라는 오명을 받은 만큼 일하는 국회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다. 180석의 여당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개혁 입법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쪼그라든 야당은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열심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의욕이 넘쳐 모두가 기대하는 바대로 굴러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몸집 큰 여당은 숫자로 밀어붙일 유혹을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고 여기에 투쟁과 대립의 무기로 맞설 야당이 버티는 한 식물국회·동물국회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 열정과 치열함으로 무장했을 초선 의원 비율이 절반을 넘으니 낡은 정치와 결별하고 새로운 정치가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임기 중반에 치르게 될 대선으로 의정활동이 뒷전으로 밀려날 우려도 있다. 어쨌든 기대 반 우려 반 긴 여정은 시작되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헌법 제40조에 적혀 있다. 국회 본연의 임무는 입법권 행사다. 국회의 입법 활동에 대한 국민 요구는 날로 증대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변화는 다양해지고, 기능은 세분화되어 새로운 입법이 필요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법 개정의 과제는 쌓여가니 의원 발의 건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16대 국회와 비교해 발의 건수는 10배 늘었지만, 가결률은 훨씬 떨어진다. 16대 2507건, 63%에서 20대 2만4141건, 37.8%다.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범죄가 발생하면 특별법이나 형량만 높이는 개정안을 발의한다. 20대 국회에서도 형법, 형사소송법, 성폭력처벌법 등 형사법 관련 개정안이 가장 많았다. 입법 포퓰리즘이다. 의정활동 평가지표로 발의 건수가 들어 있어 입법실적을 쌓기 위한 ‘부풀리기 발의’가 허다하다. 폭증한 의원입법 발의만 보면 일하는 국회의원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복입법에 쪼개기입법, 졸속에 부실입법까지 양은 엄청나지만 질은 한참 떨어진다. 입법자가 세 마디만 고치면 도서관의 법학 서적은 쓸모없게 되는데, 몇 마디 고치는 법안, 일본식 한자어를 우리말로 고치는 법안 등 통합해서 한 건으로 발의해도 될 내용이 허다하다. 질적으로 보면 정부 발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가결률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입법이라는 고유 업무에서 행정부보다 밀린다. 이렇듯 국회 입법 기능의 불완전성은 법치국가의 오점이자, 국회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상시 일하는 국회, 날마다 열려 있는 국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 대표라면서도 지역구에 가서 민원 챙기고 경조사에 얼굴 내밀기, 지역구 예산 따내기가 국회의원의 주된 업무다. 행정부와 사법부처럼 날마다 출근해서 일하는 곳을 감시·견제하려면 상시 열려 있어 일하는 국회여야 한다. 상임위원회도 상설화해야 한다. 100일간의 정기국회 이외에는 열린다는 보장이 없는 국회로는 의회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 정부 제출 법률안에 밀리지 않으려면 발의 절차 역시 간이해서는 안 된다.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양질의 법률안이 발의될 수 있는 절차와 제도가 필요하다. 절차를 간소화해 의원 발의를 활성화하고 발의 건수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대적 변화와 다양성에 대응하는 법률, 각 분야의 전문성에 상응하는 법률, 전체 법체계에 정합성과 적절성을 갖춘 법률, 헌법에 부합하는 법률, 입법으로 인한 부작용이 최소화될 수 있는 법률이 발의되려면 사전심사 절차도 강화하고 충실한 입법 영향분석도 필수적이다. 민의를 반영할 수 있도록 입법 예고기간도 늘려야 한다. 그래야 부실·과잉 입법을 막을 수 있다. 각 상임위에 법률안 상시심사를 위한 소위원회를 상설화하여 법제사법위원회가 하는 체계·자구심사를 미리 해야 한다. 법률 전문인력을 확충해서 법률안 검토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법률가 출신 국회의원이 두루 포진해 있어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법률전문가의 지원을 받으면 된다. 그래야 좋은 법률, 위헌적이지 않은 법률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자”라는 논의는 국회 개원 때마다 나오는 단골 이슈지만 번번이 법제화에는 실패했다. ‘일하는 국회법안’ 처리가 21대 국회 성공 여부의 첫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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