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네 공립 도서관에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수도권 지역에 대한 강화된 방역 조치 시행에 따라 오는 14일까지 문을 닫는다’는 알림이었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도서관과 구청 도서관도 폐쇄 조치가 내려졌다. 서울·인천·경기 지역의 미술관·박물관도 운영이 전면 중단됐다.

오창민 사회에디터
도서관은 지난 3~4월에도 일제히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해지자 지난달 초 문을 열었지만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감염이 늘면서 3주 만에 다시 폐쇄됐다. 읽고 싶은 책을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이른바 ‘워킹 스루’나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책을 빌릴 수 있는지 도서관에 문의했다. 도서관 직원은 이번 폐쇄 기간에는 그런 서비스도 안 한다며 미안해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쿠팡 물류센터가 폐쇄된 점을 들어 도서관 책을 외부에 유통하는 것 자체가 곤란하다고 말했다.
전염병 확산을 막는 게 급선무이므로 도서관 폐쇄와 대출 서비스 중단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방역 당국으로서도 고육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원이나 술집, 클럽 같은 곳은 여전히 성업 중이고, 전국의 초·중·고교생들이 오프라인 등교를 시작한 마당에 도서관을 폐쇄하는 것이 능사인지 의문이 든다. 정세균 국무총리의 말처럼 “두렵다는 이유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불특정 다수가 드나드는 다중이용시설(多衆利用施設)이지만 도서관은 코로나19 방역에 그리 취약한 곳이 아니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1만1600여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지만 도서관에서 발생한 경우는 없다. 도서관에서는 큰 소리로 대화하는 것이 금지돼 비말(飛沫)로 인한 감염 위험도 적다.
운영의 묘를 살리면 도서관 내 코로나19 전파 가능성은 더욱 낮출 수 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게 온라인이나 전화로 이용자 예약을 받거나 약국에서 공적 마스크를 판매하듯 ‘5부제’를 하면 된다. 개인 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지만 QR코드 전자출입시스템 도입도 생각해볼 수 있다. 통풍이 잘되고 널찍한 실외 공간에 임시 서가를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 방역 때문에 일손이 부족하다면 인력을 늘리거나 한시적으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수 있다. 이미 정부는 35조원의 세번째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수십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 터다.
유종필 전 국회도서관장이 쓴 <세계 도서관 기행>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아카데미 도서관 사연이 실려 있다. 당시 레닌그라드는 히틀러 독일군에 900일 가까이 봉쇄됐다. 식량과 연료가 바닥나고 도시에는 매일 수백발의 포탄이 떨어졌다. 건물 유리창이 깨지고 영하 30~40도의 혹한에 난방도 되지 않았지만 과학아카데미 도서관은 단 하루도 닫지 않았다. 심지어 군대와 병원을 위한 이동도서관까지 운영했고, 이 과정에서 도서관 직원의 절반이 사망했다고 한다. 전쟁과 고립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직원들이 도서관 문을 연 것은 도서관이란 존재 자체가 주민들에게 안식과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1940년대 구소련의 도서관이 한 일을 2020년 한국의 도서관이 못할 이유는 없다. 도서관 문을 닫아 접근을 막을 게 아니라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갈 만한 장소가 마땅찮은 시민들에게 도서관 이용을 유도하는 역발상 행정은 어떤가. 평소 도서관에 가지 않는 사람들도 이번 기회에 도서관을 접하게 해 도서관 이용자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다. 미술관과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방역을 철저히 하면서 개관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클럽이나 노래방으로 향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줄 것이다.
코로나19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까지 바꾸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일에 독서는 필수다. 문화강좌 개최 등 도서관의 사랑방 기능은 잠시 축소하더라도 시민들이 원하는 책을 읽고 자료를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특히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이번 기회에 도서관의 진가를 경험할 수 있도록 당국이 노력을 해줬으면 한다.
지식의 보고인 도서관은 최고의 복지시설이기도 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서관은 부자와 빈자,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코로나19가 무서워도 도서관은 열어야 한다. 재난 이후를 대비하고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공 시스템이 바로 도서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