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표지.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고 신영복 선생은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여름 징역’의 고충을 이렇게 묘사했다. 폭염이 열악한 환경 속 가난한 이들에겐 창살 없는 감옥이 될 수 있음을 일깨운다. 에어컨 등 문명의 이기를 갖춘 공간에서 폭염과 열대야를 보낼 일반 시민들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촌 주민들에게 여름은 그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지자체들은 취약계층의 ‘일상 속 여름 징역’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놨다. 잠깐이나마 더위를 피하고 잠도 청할 수 있도록 복지관, 경로당 등에 (야간) 무더위쉼터를 만드는가 하면 물을 뿌려 더위를 식히는 쿨링포그, 바닥분수 등도 설치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런 ‘여름 피난처’마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바로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기존 대책들이 거리 두기를 어렵게 하는 데다 바이러스의 온상이 될 수도 있어 지자체마다 전전긍긍하고 있다.
4일 경상도와 전라도 곳곳에 올해 첫 폭염특보가 발령됐다. 올여름 폭염과 열대야 일수는 평년의 2배 이상이 될 것으로 예보됐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미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맞는 첫 번째 여름으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힘든 여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와 폭염은 취약계층에 더욱 가혹하다.
신영복 선생은 이어 말한다.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 그러나 머지않아 조석(朝夕)의 추량(秋凉)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바이러스도, 폭염도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이 있어야 이길 수 있다. 이번 여름이 ‘경험해보지 못한 집단지성과 연대의 여름’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