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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을 타고 흐르는 스타인웨이의 환희와 눈물

  • 문학수 기자
[책과 삶]선율을 타고 흐르는 스타인웨이의 환희와 눈물

스타인웨이 만들기
제임스 배런 지음·이석호 옮김
프란츠 | 436쪽 | 2만2000원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1934~2013)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콘서트를 열기 하루 전 기가 막힌 피아노를 발견했다. 연습실에서 우연히 만난 그 피아노에 완전히 매료돼 “내가 사겠다”고 즉석 제안한다. 그것은 피아노 제조사 입장에서 보더라도 훌륭한 마케팅이었다.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한눈에 반한 피아노’는 광고 카피로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제조사인 스타인웨이 측은 피아노를 넘길 수 없었다. 주된 마케팅 방식이 ‘대여’였기 때문이다. 이 제조사는 세계 곳곳의 유명 콘서트홀에 일정 기간 임대하는 방식으로 브랜드 파워를 키워왔다. 이를테면 영국 브로드우드가 유명 연주가에게 직접 대여하거나 선물하는 방식, 프랑스의 플레옐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콘서트홀을 지어 홍보하는 방식과 달랐다. 클라이번이 한눈에 반한 피아노는 이미 아홉 달이나 예약이 걸려 있었다.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고 1990년 12월에야 명기(名器)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스타인웨이는 이렇게 자사 피아노를 세계의 주요 콘서트홀에 배치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뒀다. 이 방식은 특히 연주회 실황이 TV로 중계되는 시대에 들어서면서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카메라가 피아니스트를 클로즈업하는 순간, ‘스타인웨이’라는 금박 로고도 함께 잡혔다. 지금도 세계의 콘서트홀에 놓여 있는 피아노의 약 98%가 스타인웨이다.

2005년 12월16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무대 위의 K0862(CD-60).   Franz 제공

2005년 12월16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무대 위의 K0862(CD-60). Franz 제공

물론 스타인웨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누를 때의 느낌, 예컨대 부드러움이라든가 견고함의 강도가 미묘하게 다르다. 감응이 빠른 피아노는 살짝 눌러도 반응하지만 무뚝뚝한 피아노는 깊이 눌러야 제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어떤 스타인웨이는 보다 작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데, 그렇다면 이 친구는 실내악 무대를 거점으로 삼는 것이 옳다. 반면 어떤 스타인웨이는 사자처럼 포효한다. 그렇다면 이 친구는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한바탕 격전을 치르는 협주곡 무대가 어울린다.

피아니스트들도 취향과 기질에 따라 각자 애기(愛器)가 다르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에게 흡족한 피아노가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만족시킨 액션에 알프레트 브렌델은 불만을 표할 수도 있다.” 연주자들은 자신의 피아노가 가진 개성에 대해 자주 언급할 뿐 아니라 감정적인 애착도 느낀다. “자기 피아노에 입을 맞추는 피아니스트가 있고, 마치 연인의 뺨을 쓰다듬듯 부드럽게 피아노를 어루만지는 피아니스트도 있으며, 다른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 말을 피아노에게 건네는 피아니스트도 있다.”

책 저자는 뉴욕타임스의 26년차 기자다.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책은 스타인웨이 피아노, 그중에서도 ‘K0862’로 불리는 피아노 제작 과정을 기본 뼈대로 삼았다. 저자는 11개월 동안 그 과정을 밀착 취재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피아노 제작 공정을 기록한 책은 아니다. 가공되지 않은 커다란 나무가 한 대의 피아노로 완성돼가는 과정을 살피면서, 스타인웨이라는 굴지의 피아노 메이커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함께 조명한다. 피아노 공장에서 땀 흘리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이미 세상을 떠난 앞세대 장인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피아노에 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도 곳곳에 녹아 있다.

창립자 하인리히 엥겔하르트 슈타인베크

창립자 하인리히 엥겔하르트 슈타인베크

알려져 있다시피 스타인웨이는 유럽의 피아노 제조업체 중 비교적 후발주자였다. 1797년 독일에서 태어난 하인리히 엥겔하르트 슈타인베크가 창업자다. 첫번째 공장은 그의 집 부엌이었다. 그는 1849년 뉴욕으로 이주, 미국식 이름인 헨리 E 스타인웨이로 개명하고 아들들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피아노 공장을 차렸다. 공식 창립일은 1853년 3월5일이다.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Steinway & Sons)라는, 하이엔드 피아노의 대명사가 된 브랜드는 그렇게 탄생했다. 맨해튼의 작은 공방에서 가족 노동으로 시작했던 사업은 점점 규모가 커졌고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대박’을 쳤다.

헨리의 장남인 C F 테오도어 스타인웨이는 “미국을 너무도 싫어했던 나머지 1884년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함부르크에 공장을 차렸다”. 함부르크 스타인웨이는 미국에서 생산된 스타인웨이와 “건반의 양끝을 둘러싸는 암(Arm)의 모양”이 달랐다. “뉴욕산은 암의 모서리가 날카로운 직각에 가까웠던 반면, 함부르크산은 암의 모서리가 둥글었다.” 이 작은 차이는 피아니스트들에게 음색의 차이로 다가왔다. 실제 적지 않은 피아니스트들이 “함부르크가 뉴욕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고른 소리를 낸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1년간 제작 과정을 지켜봤던 K0862는 2003년 만들어졌다. 알파벳은 해마다 새해를 맞아 바뀐다. 2003년은 K, 2004년은 L, 2005년은 M으로 시작한다. K0862는 공장에서의 마지막 날인 2004년 2월9일, No.565700이라는 일련번호를 부여받았다. 스타인웨이에서 제작한 통산 56만5700번째 피아노라는 뜻이다. 이 친구는 트럭에 실려 맨해튼 이스트사이드의 스타인웨이 쇼룸으로 옮겨졌으며, 그곳에서 ‘CD-60’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데뷔는 그해 4월26일, 피아니스트 조너선 비스의 미시간 연주회에서 이뤄졌다. 얼마 후 보자르 트리오의 콘서트에서 메나헴 프레슬러가 이 피아노를 연주했다. 11월에는 비스가 자신의 어머니인 바이올리니스트 미리암 프리드와 펼친 이중주 무대에서 이 피아노와 재회했다. 책은 이처럼 K0862로 시작해 CD-60으로 불리게 된 피아노의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스타인웨이 가문의 흥망성쇠로 읽힌다.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는 1972년 CBS에 매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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