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시민들의 도움 절실” 동아시아 국가의 지지는 남다른 의미
홍콩 거리에 ‘우리가 아니면 누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 에이미 제공
소강상태였던 홍콩 민주화 시위에 불이 붙었다. 중국 정부가 국가안전법(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하면서다. 베이징 당국의 맹공 속에 ‘일국양제’는 붕괴 위기에 놓였다. 1년 전 범죄인인도개정법안(송환법)을 막아낸 시민은 홍콩 국가보안법에 맞서 거리로 나오고 있다.
홍콩 경찰은 진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해 6월 9일부터 올해 5월 14일까지 송환법 반대시위로 체포된 사람은 총 8337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폭동죄로 기소된 인원만 595명이다. 지난 5월 27일 하루 동안 396명이 체포됐다. 여기에는 미성년자(80명)도 포함됐다.
경찰의 강경 진압 속에 홍콩 민주 세력은 국제사회의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 6월 1일 조슈아 웡 홍콩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은 <다이알로그차이나>를 통해 “지금의 홍콩에는 한국 민주시민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민주와 자유의 한국이 홍콩의 시간을 함께 걸어달라”고 지지를 청했다.
하지만 한국이 홍콩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난해와 비교해 온도차가 있다. 코로나19로 홍콩 이슈가 주요 관심사에서 밀려난데다 국내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주요 의제에 오르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편에서는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은 중국 내부 문제일 뿐 한국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선을 긋고 있다. 시민사회의 연대는 동정에 불과하다는 ‘국제연대 회의론’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홍콩을 향한 시민의 지지는 의미 없는 것일까. 시민의 연대가 홍콩 시민에게 힘이 될까.
“한국이 홍콩의 시간을 함께 걸어달라”
지난해 6월 홍콩 시민은 시위 역사를 다시 썼다. 2019년 6월 16일 200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이 송환법을 반대하며 거리로 나왔다. 경찰의 폭력 진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3개월 만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송환법 철회를 공식 선언했다. 송환법 철회 과정을 지켜본 중국 정부는 오히려 홍콩에 대한 강한 통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중국 정부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직접 나서 보안법 제정을 추진하는 초강수를 강행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행보였다.
그럼에도 홍콩 시민은 ‘5대 민주주의 요구안’을 주장하며 대규모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됐지만, 시위대는 코로나19에 맞춰 새로운 방식의 집회를 열었다. 홍콩 정부는 코로나19를 빌미로 강경 진압에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홍콩 정부는 ‘물리적 거리 두기’를 이유로 4인 이상의 모임을 전면 금지하는 ‘집합금지령’을 내렸다. 어길 시에는 2만5000홍콩달러(약 400만원)의 벌금과 6개월 징역형에 처해진다. 홍콩 정부는 4인 제한을 8인 제한으로 완화했지만 집합금지령은 유지되고 있다. 지난 6월 2일 홍콩 정부는 집합금지 조치를 6월 18일까지 연장했다. 톈안먼 사건 추모집회를 포함해 6월에 예정된 시위 1주년 기념 집회를 겨냥한 처사다.
재한 홍콩 유학생 에디(가명·26)는 “친정부 세력은 집회를 해도 내버려 두지만, 민주 세력은 코로나 집합금지령을 내세워 바로 체포한다”며 “백색테러로 시위자들이 위축된 상황에서 코로나를 이유로 마구 잡아가다 보니 시위에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홍콩 시민이 느끼는 불안감은 커지고 민주화 투쟁 여건은 전보다 악화됐다. 홍콩 경찰은 코로나19를 통해 집회를 탄압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여기에 미국 내 인종차별 항의시위 확산으로 홍콩 이슈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분산됐다. 중국 정부는 ‘홍콩은 중국 내부 문제’라고 선을 긋고 ‘간섭하지 말라’며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 정부의 압박 속에서 홍콩 시민은 국제사회 연대를 거듭 호소하고 있다. 국제연대는 영향력을 갖고 있을까.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의 지지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중국 정부는 미국 등 서구권 국가의 지지에 의존하는 홍콩 시민을 제국주의 결탁 세력으로 프레이밍한다. 미국의 지지를 받는 매국세력으로 몰아 민주화 운동의 본질을 흐리는 전략이다. 홍콩 시민 40% 이상이 친중파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제국주의 프레이밍’은 시위대 ‘힘 빼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략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지지와 연대는 홍콩 민주화 운동의 구도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의 지지와 연대는 매국 프레임을 깨뜨리는 효과가 있다”며 “민주화 세력의 본질은 제국주의라는 구도에서 벗어나는 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국가보안법 폐기를 촉구하는 한국 시민단체 회원들이 6월 1일 서울 중구 명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홍콩 국가보안법 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대학가 중심으로 ‘레넌벽’ 세워져
시민사회의 참여는 정부 중심의 국제연대가 갖는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장정아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중어중국학과 교수)은 “어느 나라나 정부가 공개적으로 표명할 수 있는 입장에는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런 점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특히 한국사회는 시민이 인권과 민주와 자유라는 가치를 위해 싸우며 희생됐고, 이를 통해 전진한 역사가 있다. 우리 사회의 시민이 만들어온 가치를 보여주며 연대함으로써 공동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의미를 가진다”고 덧붙였다.
한국 시민사회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려대와 경희대·한양대 등 대학가를 중심으로 ‘레넌벽’이 세워졌다. 레넌벽을 설치한 정의당 청년당원모임 모멘텀은 ‘위기의 홍콩, 담대한 저항에 함께하자’며 ‘홍콩의 입을 틀어막는 국가보안법을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6월 1일과 4일에는 시민사회 단체가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홍콩 국가보안법 폐기를 촉구했다. 글로벌 연대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한 홍콩 유학생 주디(가명·25)는 “소용없다고 미리 생각하고 침묵하면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인들이 연대하면 동참하는 홍콩 시민도 늘 것이고 다른 나라 시민의 연대도 확산될 것으로 믿는다. 생각보다 더 큰 영향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인 홍명교씨는 “국제연대는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라며 “연대를 통해 홍콩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만의 시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 홍콩을 하나의 방법으로 여겨 한국사회를 들여다보고 문제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