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보안법 두고 미·중 충돌… 수출시장은 큰 영향 없지만 금융시장은 대비해야
홍콩보안법 제정 이후 미국과 중국이 저강도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29일(현지시간) 관세·투자·무역·비자와 관련해 미국이 홍콩에 부여했던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혔지만, 시기를 못 박지는 않았다. 양국이 한발 물러서 실효성 있는 카드를 고르는 모양새지만 소규모 공방은 계속됐다.
중국이 미국 항공사의 중국취항 재개를 허용하지 않자 미국은 6월 3일 중국 항공사 여객기의 미국 운항을 막기로 하면서 맞불을 놨다. 미국 상무부는 6월 5일부터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광학기술 등 기술기업 18곳을 포함한 33개 중국 기업·기관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발효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확대 개편하는 구상을 밝히며 반중 세력 결집에도 나섰다.
홍콩의 친중파 시위대가 5월 30일(현지시간) 미국의 홍콩 영사관 주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꼭두각시와 그를 비난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국 수출에 미칠 타격 크지 않아
중국은 미국과의 1단계 무역 합의 이행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중국은 향후 2년간 320억 달러의 농산물을 포함해 미국산 상품·서비스 수입을 2017년 대비 2000억 달러 더 늘리기로 했다. 중국은 무역 합의를 성실히 이행 중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산 농산물 수입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 수요에 적합한 수준의 구매를 진행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쳐 향후 수입 규모가 합의 수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미·중 갈등은 패권 다툼이라는 점에서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미·중 갈등이 불러올 경제 충격을 다양한 시나리오를 짜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1992년부터 홍콩에 부여해온 특별지위를 박탈하면 중계무역과 금융허브로서의 홍콩의 위상 추락은 불가피하다. 홍콩은 전체 교역 중 약 89%가 재수출에 해당하는 중계무역의 거점이다. 특별지위를 잃게 되면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품목에 대한 관세는 기존 1.6%에서 중국 본토와 마찬가지인 최대 25%로 뛰게 된다. 이 경우 홍콩을 경유해 무관세 혜택과 낮은 법인세라는 이점을 누린 수출국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지난해 중국 수출의 12%(대미 수출의 77%)가 미국의 관세를 피할 수 있는 홍콩을 거쳐갔다는 점에서 중국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 포위 전략의 핵심 협력국인 대만이 받을 타격도 크다. 대만은 홍콩을 경유한 중국행 재수출 비중이 중국·한국보다 높다. 경제적 측면만 고려하면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을 선택할 동기는 크지 않다. 미국도 무관세나 비자 등에서 누린 혜택을 잃게 되면 최대 무역흑자 지역인 홍콩시장으로의 접근이 어려워질 수 있다. 중국이 해외 자금의 60%를 홍콩에서 조달하지만, 그 자금의 대다수는 유럽과 일본, 미국계라는 점에서 금융 제재도 쉽지 않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관세·무역 측면에서 실효적인 조치가 많지 않다”면서 “투자를 보더라도 미국 자본의 홍콩 유입을 막는다면 결국 월가의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연주 신영증권 중국전략 담당 애널리스트는 “미국도 현재 무관세로 홍콩을 경유해 아시아 지역에 수출하는데 홍콩은 달러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혜택을 보고 있다”면서 “미국이 홍콩에 특별지위를 부과한 것은 그만큼 미국이 수혜를 받기 때문이었는데 그걸 포기하는 선택은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제재로 홍콩을 중계무역 거점으로 활용하기 어려워지면 단기적으로 한국의 수출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재수출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1.7%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해 한국에서 홍콩으로 간 수출품목 중 70%(222억 달러·금액 기준)를 차지한 반도체가 입을 타격도 크지 않다. 홍콩으로 간 한국산 반도체의 90% 이상은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재수출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중국으로의 반도체·정보통신 분야 수출품은 사실상 무관세라는 점에서 중국 직수출로 전환해도 거래선 전환 비용만 늘 뿐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히려 홍콩을 경유한 중국의 대미 수출길이 막히면 석유화학, 가전, 의료·정밀, 광학기기, 철강 제품, 플라스틱 등 수출 경합도가 높은 분야에서 우리 기업이 이익을 볼 가능성도 있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시장 내에서 한·중 간 경합도가 높은 산업, 특히 자동차 부품 산업 같은 경우 중국 제재로 한국의 수출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웨이 등 첨단기술 관련한 제재는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허브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개미들, ELS 대규모 손실 가능성 고려해야
다만 전문가들은 홍콩 특별지위 박탈 시 금융시장이 큰 타격을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중 간 갈등 격화로 홍콩 증시가 폭락하고 홍콩달러와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면 그 여파는 위안화와 동조 경향이 강한 한국을 비롯한 주변 아시아 국가의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홍콩의 달러화 페그제 붕괴가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홍콩은 1983년부터 홍콩달러의 가치를 달러화에 연동하는 페그제를 채택해 왔다. 홍콩의 중앙은행격인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달러·홍콩달러 환율이 페그제 상단인 7.85홍콩달러 선에 근접하면 개입해 홍콩달러를 달러당 7.75~7.85홍콩달러로 유지해왔다. 페그제는 환율 안정을 가져와 홍콩이 국제무역과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7년 블랙 먼데이, 2001년 9·11 테러, 2009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등 숱한 충격에도 홍콩 경제를 지켜냈다.
페그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풍부한 외환보유액을 갖춰야 하고, 자본이동이 자유로워야 한다. 홍콩의 외환보유액은 우리보다 조금 많은 4400억 달러 내외로 추정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나 파운드화의 유로존 이탈을 비롯해 과거의 페그제는 대부분 실패했지만, 홍콩의 달러 페그제는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며 “막대한 달러를 보유해 홍콩달러를 계속 미국달러로 바꿔주면서 환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중 갈등 격화와 홍콩 제재의 수준에 따라 이런 안정성이 무너지는 순간이 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페그제 붕괴 위기가 가시화할 경우 홍콩 증시가 폭락하면서 홍콩주가지수와 연동된 국내 증시의 손해가 커질 수 있다. 홍콩H지수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 잔액은 지난달 5월 31일 기준 약 29조원에 이른다. 2018년 초고점에 발행된 상품들의 경우 지수가 7000대까지 떨어지면 원금손실구간(녹인·knock in)에 들어가는데 현재 지수는 10000대 내외를 유지하고 있어 아직 여유가 있다. 하지만 규모가 큰 만큼 독일 국채 금리연계 상품인 DLS 사태와 같은 투자자 손실을 막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김소영 교수는 “홍콩H지수와 연계된 ELS는 독일 국채 연계 상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중적으로 팔린 상품이다”면서 “홍콩 증시가 기준선 이하로 폭락하면 폭락한 만큼 손해를 입는 구조인데 리스크를 알고 투자한 상품이라 투자자 보호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