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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살아 있다

입력 2020.06.10 03:00

수정 2020.06.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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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그걸 확인시키는 기록이다.

그는 정당 행사에서 민중가요를 제창했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지난 5월14일 유죄가 확정되었다. 2012년 옛 통합진보당 행사인 출마자 결의대회에서 ‘혁명동지가’를 제창한 게 국가보안법 제7조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혁명동지가 제창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며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문제 삼은 ‘혁명동지가’는 가수 백자가 1991년 만든 민중가요로 그간 진보 행사에서 수없이 불렸던 노래다. 수도권 유일의 진보정당 3선 기초의원인 안소희 파주시의원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중형에 처해졌고, 시의원직을 잃었다. 시인 김수영이 “김일성 만세”를 인정할 수 있어야 언론자유의 출발이 이뤄진다고 갈파한 때가 60년 전이다. 아직도 만주의 무장독립투쟁을 형상화한 민중가요를 제창했다고 보안사범이 되고 시의원직을 박탈당하는 세상이다.

양권모 편집인

양권모 편집인

그들은 북한의 어린이책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끝내 교단에서 쫓겨났다. 검찰은 2013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 4명을 이적단체 구성과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기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적단체 구성 혐의는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를 적용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지난 1월19일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해당 이적표현물은 <봉이 김선달> <열두달 민족 이야기> 등 주로 북한의 어린이 도서다. 정부의 공식 허가를 받아 진행한 2005년 남북교육자 교류 당시 검열을 받고 반입한 책들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거나 서점에서 판매도 됐던 북한 도서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사상범이 되어 교단에서 축출되는 세상이다.

돌이켜보면, ‘정권보안법’으로 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국가보안법을 역사의 무덤으로 보낼 기회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확보한 2004년 4·15 총선 직후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법무부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정식 권고했고,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조차 국가보안법 악용의 상징인 제7조의 개폐 의사를 밝히기까지 했다. 정작 열린우리당이 ‘폐지 후 형법 보완’과 ‘별도의 대체 입법’을 주장하는 쪽으로 분열되어 엄청난 갈등과 논란을 벌이면서 국가보안법을 개폐할 절호의 기회를 소진했다.

노무현 정부의 조락을 재촉한 ‘국가보안법 파동’은 친노·친문이 주류가 된 민주당에는 뼈아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국가보안법 문제를 마치 ‘터부’처럼 여기며 아예 거론조차 못하는 것은 아마도 그 트라우마 때문일 터이다. 총선 이후 보안법 폐지 얘기가 나오자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반성한다”며 입단속부터 하는 상황이다. 177석의 여당이 내놓은 입법 과제에 국가보안법은 흔적도 없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반성할 건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 추진이 아니라 자중지란으로 그 기회를 박차버린 역사적 과오이다.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되었고 적용만 엄격히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변명은 기만이다. 국가보안법은 운용의 묘를 통해 지나간 역사가 될 수 없다. 법전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양심조차 규제하겠다는 야만적 국가폭력의 소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공공도서관에서 북한 책을 누구나 열람할 수 있고, 검색 한 번으로 북한 영상을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이적표현물 소지’와 민중가요 제창을 이유로 처벌받은 ‘그들’과 ‘그’의 사례가 보여준다.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한,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는 일체의 행위가 ‘찬양·고무’와 ‘선전·선동’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평양냉면에 대한 칭찬도 공안기관이 작정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다.

국가보안법, 특히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유린하는 국가보안법 제7조가 존속하는 한 온전한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 개폐는 진영 논리나 정치적 흥정물로 접근할 대상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국가보안법 철폐다. 입법적 결단을 회피하고 있는 민주당은 이제야말로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그 용기 있는 결단을 불러와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이니 이제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없애야 대한민국이 드디어 야만의 국가에서 문명국가로 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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