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대북전단 살포 단체 고발·법인 취소 배경

전단 기습 살포 대비…현장 지키는 경찰 경기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에 배치된 경찰들이 10일 탈북자 단체 등의 대북전단 기습 살포에 대비해 현장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 ‘표현 자유 제한’ 판례 등 5가지 근거로 기존 입장 바꿔
‘고무줄 잣대’ 논란…탈북자 단체 “15년간 가만있다 왜” 반발
민주당 “국회가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 처리 필요” 목소리
통일부가 10일 대북전단 살포 활동을 벌여온 단체 2곳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고발 조치하는 초강수를 선택한 것은 북한이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남북관계를 단절 국면으로 몰고가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전단 살포를 포함한 모든 적대행위를 중지키로 한 4·27 판문점선언 직후 했어야 할 후속 조치를 정부가 2년 넘게 손 놓고 있다 뒤늦게 취한 셈이다. 북한이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거론하며 무력충돌 위험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예상되는 비판과 논란을 무릅쓰고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일부는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이 해온 대북전단과 페트병 살포행위가 “교류협력법상의 미승인 반출”에 해당돼 “교류협력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교류협력법 위반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게 정부 입장이었다. 통일부는 입장이 바뀐 이유로 5가지 “사정 변경”을 들었다.
첫째 남북 간 모든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합의한 4·27 판문점선언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과, 둘째 2016년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한 소송에서 표현의 자유는 공공복지와 지역주민 안전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제한할 수 있다고 한 대법원 판례가 나온 것을 제시했다. 셋째로는 전단 물품과 살포 기술이 다양화되고 있고, 넷째 전단을 통한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있으며, 다섯째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안과 고통이 크다는 점을 들었다. 전단 외에도 쌀, 이동식저장장치(USB), 달러 등을 북한으로 보내면서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것도 지적했다.

북한, 연일 대북전단 항의 집회 북한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여맹) 간부들과 여맹원들의 대북전단 살포 항의 군중집회가 지난 9일 황해남도 신천박물관 앞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통일부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가 나온 지난 4일까지만 해도 “교류협력법을 통해 전단 문제를 규율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일주일 만에 “사정 변경”을 이유로 180도 바뀐 유권해석을 내놓은 셈이다. 북한이 남북 통신선을 모두 차단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오는 25일 전단 100만장을 날려보낼 것이라고 예고하는 상황에서 당장 실효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금까지 문제 삼지 않던 행위를 위법으로 규정하면서 논란이 불가피해졌다. 판문점선언 이후에도 전단 살포를 사실상 방치해오다 뒤늦게 대책을 내놓으면서 비판을 자초한 셈이다. 전단 등의 살포를 교류협력법상의 ‘물품 반출 행위’로 볼 수 있을지도 논란거리다. 과거에도 정부가 전단 살포 단체를 고발한 적이 있지만 무혐의 처리됐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전달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수단으로 보내면서 교류협력법상의 승인 절차를 밟는 게 가능하느냐는 문제제기도 나온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이제껏 가만히 있다가 김여정 한마디에 문제 삼느냐”고 반발했다. 미래통합당은 논평을 내고 “김여정 부부장의 호통이 있은 지 4시간여 만에 법을 만들겠다 하고 6일 만에 국민을 처벌하려는 ‘패스트트랙’을 탄 것”이라고 비판했다.
판문점 합의가 ‘통치 행위’의 결과물이긴 하지만 국회 비준도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단체를 고발할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느냐를 놓고도 논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에서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설훈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가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