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차별이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목이 눌린 채 “숨을 쉴 수 없다!”고 외치며 사망한 비극적인 상황이 영상을 통해 알려지면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계속되고 있다.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연대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어떠한 임계점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이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얼마 전 국회에서도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 초선의원 9명이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고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헌법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어떠한 형태의 차별에 대해서도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서 모양새가 좀 빠지긴 했지만, 그동안 통합당 내에서 거의 금기어 수준이었던 ‘차별 반대’라는 구호를 살려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야를 넘어선 공감대가 결국 입법 과정에서 중요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냥 비난할 일은 아니다.
다시 돌아가서, 미국에서 백인 경찰관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청년들이 목숨을 잃는 것은 이미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비극이다. 그런데 이번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과거와 달리 미국의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가고 있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차별의 문제를 연이어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코로나19 이후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를 드러냈다. 어떤 이들은 흑인들 역시 동양인에 대한 코로나19 인종차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반대에 동참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커지면 커질수록 그동안 감추어졌던 다양한 차별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차별과 배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내가 경험한 차별만이 중요하다’는 관점이 아니라, ‘내가 경험한 차별을 다른 사람들도 이름을 달리하여 경험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플로이드가 외쳤던 ‘숨을 쉴 수 없다’는 구호가 그동안 사회 곳곳에서 차별과 배제, 불평등으로부터 침묵을 강요받아온 다양한 사회집단들의 목소리와 공명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코로나19에 따른 팬데믹이라는 세계적 위기상황이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공동의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동안 가정(假定)으로 설명했던 성소수자, 미등록이주민, 인종을 이유로 한 부당한 차별과 배제가 공동체를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는 주장이 실증적으로 입증되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는 새로운 공동체의 철학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기로를 지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는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에게 지자체의 재난지원금 정책에서 외국인 주민이 배제되지 않도록 정책을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공공정책에서 배제된 집단은 사회적으로 중대한 낙인효과가 생긴다는 점에서, 외국인 주민이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이번 결정은 매우 소중한 디딤돌이다. 차별의 시대를 극복할 공존의 지혜는 결국 이런 디딤돌이 계속 이어지는 과정에서 생겨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