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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운동 내전, 우리의 가해자는 누구인가

입력 2020.06.15 03:00

수정 2020.06.1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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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운동이 흔들리고 있다. 1991년 8월14일 고 김학순님의 증언 이후 국가(군대)가 위안소를 운영한 역사상 유례없는 중대 범죄에 저항해온 세월만큼이나 강고할 줄 알았는데. 민족주의, 젠더 이슈라는 운동의 개념부터 피해자 중심주의, 대표성이라는 운동의 관계까지 한꺼번에 모든 문제가 분출하고 있다. 특히 전시일본군성노예제(역사적 사실에 대한 국제적 합의내용을 준수하는 표현) 피해 생존자는 활동가와 함께 가해자 응징을 촉구하며 여성인권·평화운동가로 성장했다. 연구가들도 힘을 보탰다. 때로 거리 두기에 실패하기도 했지만 조금씩 운동의 지평을 넓혀왔다. 그러나 지금 모든 것이 멈춰 선 느낌이다. 가해자는 분명한데 이용수님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윤미향 의원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등 돌리고 있다. 이 믿기 어려운 관계는 ‘위안부’ 피해자 운동을 역사의 퇴적층 어디까지 몰아가고 있나. 정의연과 윤 의원 의혹은 별개 문제로 밀어둔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범죄’로 드러날 일이 있다면 책임질 일이지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공과와는 다른 문제이므로.

구혜영 정치부장

구혜영 정치부장

정의연·윤 의원과 이용수님·피해 생존자 관계에 피해자 중심주의를 거론하는 자체가 혼란스러웠다. 단초는 이용수님의 “이용했다”는 분노였다. 피해자들을 “전시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가 아니다”라고 했다면 모를까 정의연은 시종일관 일본을 직시했다. 이용수님도 평생 일본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들의 피해자 중심주의는 가해자는 누구인지를 묻는 일이었다. 이용수님 지적은 최봉태 변호사의 말처럼 ‘고부 관계’에서 비롯된 일일 수 있고, 윤 의원이 국회 진출을 서두르느라 벌어진 일일 수 있다. 그런데 “이용했다”는 말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대립으로 해석됐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잘못 읽은 것이다. 내부의 소통 부재와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외부의 오독이 진짜 가해자를 가려버렸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정의연의 과잉 대표성 문제로 번졌다. 정의연에 대한 대중적 지지여부와 별개로 적어도 외교당국은 이 논란에 낄 자리가 없다. 정의연은 강고하게 일본의 책임을 물었다. 외교당국은 일본과의 협상에서 이런 정의연의 입장을 지렛대로 활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간 정의연이 ‘위안부’ 피해자 운동을 ‘순결한 민족의 딸’이라는 이른바 민족주의 프레임으로 전개했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정의연은 1987년 6월항쟁이 촉발한 여성운동 에너지가 집결된 운동체였다. 1990년 창립을 주도한 윤정옥 선생의 말이나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집을 보면 정의연은 보편적 여성운동 관점을 놓치지 않았다. 지난달 이용수님은 “여자이기 때문에 위안부라는 누명을 썼다. 세계 여성분들에게 피해를 끼쳐드렸다고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했다. 가장 가슴 아팠던 말이다. 여성인권운동가로 오롯이 태어났다고 했지만 ‘순결’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용수님의 트라우마는 정의연과 윤 의원으로 향했다. 정의연과 윤 의원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내셔널리즘에 동원하느라 정작 여성인 피해 생존자들의 아픔을 외면했다는 비판이다. 일부 학자와 연구가들도 이에 동조했다. 지난 활동을 돌아보면 이 역시 오독이자 오해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한 윤 의원이 사려 깊지 못했던 측면이 크다. 이용수님은 정의연과 함께했던 시간엔 극단적인 외로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누구라도 고립되면 미처 극복하지 못한 생채기가 터져나올 수 있다. 윤 의원이 ‘위안부’ 피해자 운동을 국가의 일로 만드는 일이 왜 중요한지 설득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윤 의원은 ‘한·일전’ ‘일본 민주화’를 말했다. 이는 여성인권운동이라는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중요한 성과를 놓친 과오로 남았다.

며칠 전부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맴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공훈과 무용담으로 기록되는 남성들의 전쟁과 달리 여성들은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일상을 발견했다. 첫 생리혈, 적군에 대한 연민, 사람을 죽인 고통, 포연을 뒤덮은 노래와 사랑. 작가는 당국의 검열을 뚫어내고 여성들의 사라진 목소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전쟁의 공포뿐 아니라 전쟁 속에서도 지키려 했던 일상, 전쟁 후 일상을 위협하는 상처를 숨겨야 했던 그 모든 이야기를. 그러면서 세상에 묻는다. “우리는 누구의 피해자인가, 왜 우리는 지금도 전쟁 중인가”라고. ‘위안부’ 운동 30년이 지금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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