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장담’ 후속 조치도 예고…군사적 충돌 우려 커져
위기 돌파용 벼랑 끝 전술…신뢰 하락·고립 심화 ‘역풍’

16일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장면(위 사진부터). 지상 4층의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연기가 주변을 온통 뒤덮는 모습이 군 폐쇄회로(CC)TV로 촬영됐다. 국방부 제공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철거를 시사한 지 사흘 만인 16일 연락사무소 건물을 무너뜨리며 예고했던 ‘대적 사업’과 ‘보복 조치’를 실행에 옮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대결 시대로 돌아가면 안 된다”고 북한을 향한 대화 메시지를 내놓은 지 24시간 만에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대북 성과인 연락사무소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지난 4일 담화 이후 북한이 속전속결로 행동에 돌입하면서 조만간 군사적 충돌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개성 연락사무소 건물 폭파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김 제1부부장은 13일 담화에서 “머지않아 쓸모없는 북남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며 충격적인 방법으로 연락사무소 건물을 철거할 것임을 예고했다. 앞서 장금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도 12일 “이제부터 흘러가는 시간들은 남조선당국에 참으로 후회스럽고 괴로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9일 연락사무소 정례 통화를 비롯한 남북 간 모든 연락 채널을 차단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오전 입장문에서 “북남 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들에 군대가 다시 진출하여 전선을 요새화”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연락사무소 건물은 남북 간 합의로 비무장화된 개성공단 내에 있다.

2018년 9월14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에서 당시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참석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남측 당국의 소극적 대응을 문제 삼아 공세 수위를 높여온 북한이 첫 단계 행동으로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2018년 4·27 판문점선언의 무효화를 확실히 보여주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북한은 4일 김 제1부부장 담화를 통해 남측이 전단 살포를 비롯한 적대행위를 중지키로 한 판문점 합의를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남측이 먼저 합의를 지키지 않은 만큼 북측 역시 더 이상 합의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 첫 대상으로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최대 성과물로 자부하는 연락사무소를 선택한 셈이다.
북한이 전단 살포 문제에 대한 정부 대응과 상관없이 초강경 노선을 고수하는 것은 지난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1년 이상 지켜봤음에도 남측이 미국을 설득해 제재 완화나 한·미 연합훈련 중지 등을 이뤄내지 못한 데 대한 분노와 배신감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믿고 미국과의 협상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내걸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자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다.
북한이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으며, 상당기간 관계 개선을 도모하지 않을 것임을 이번 폭파 조치로 명확히 한 셈이다. 아울러 남측을 상대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해 미 정부에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려는 속내도 엿보인다. 비핵화 협상에 근거하지 않고 핵보유 전략국가 위상에 맞게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김 제1부부장이 직접 나서 연속적인 보복을 장담한 만큼 후속조치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2월 가동 중단된 개성공단의 완전 철거, 김 위원장이 지난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진다”고 했던 금강산지구 내 남측 시설들의 폭파 가능성도 있다. 오는 25일 예고된 탈북민단체의 전단 살포에 대한 무력 대응과 함께 접경지역이나 서해 완충구역 등에서의 긴장 고조 행위로 9·19 남북군사합의 무력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북한의 극단적 행동은 남한 내 여론을 악화시키고, 김 위원장에게 ‘신뢰할 수 없는 지도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시킴으로써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