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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유예의 시대

입력 2020.06.18 03:00

수정 2020.06.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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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부고(訃告)를 몇 차례 들었다. 모셨던 선생님의 부고도 있었고 지인의 부고도 있었고 동료 작가의 부고도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이러한 부고에는 몇 가지의 말이 덧붙었다. ‘이런 시기에 이렇게 추도 못 받고 가실 분이 아닌데’나 ‘이런 상황이라서 마음으로만 명복을 비는 것이 죄송스럽습니다’ 같은 말들. 상주 측도 ‘이런 시기이니만큼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라는 겸양을 표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이융희 문화연구자

이런 현상은 꼭 부고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활성화되고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감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며 결혼과 돌잔치 등 다양한 관혼상제의 예식과 교류의 자리가 사라졌고 그 과정에서 오가는 감정 역시 유예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축하의 감정이 유예되는 것과 애도의 감정이 유예되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애도란 단순히 상실의 감정을 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저서 <애도와 멜랑콜리>에서 애도를 “대개 사랑하던 사람이나 그런 사람의 위치를 점하던 추상물, 예컨대 조국, 자유, 이상 등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거기서 나아가 상실로 인한 비정상적인 고통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대상의 부재를 깨닫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애도작업(work of mourning)’이라고 한다.

이렇듯 애도는 죽은 자를 기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애도에는 성찰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주디스 버틀러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뭔가가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은 단지 상실이 불러오는 변형적 과정에서만이라고 말한다. 우리 곁에서 누군가 떠났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와 친한 존재가 갑작스럽게 부재할 때, 상실한 사람들은 상실감과 함께 과거 함께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이 상실한 자들을 슬픔과 고통에 휩싸이게 만든다. 결국 타인의 죽음을 통해 과거를 끊임없이 떠올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는 중요한 정체성 점검이자 현실 점검 행위로 변모한다.

TV를 틀면 전 세계의 죽음을 볼 수 있다. 전 세계 사망자는 42만명을 넘었고 이러한 죽음은 애도할 시간도 공간도 없이 그저 기사로서 제공된다. 애도는 취약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공유된다. 코로나19의 강력한 전염성 때문에 전 세계 누구나 확진자가 될 수 있는 현 상황에서 애도는 더 이상 상실을 경험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5월 뉴스 중 브라질의 비극적 소식이 있었다. 상파울루주에서는 계속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어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 것에 대비해 공동묘지에 1만3000개의 무덤을 미리 파놓고, 아마조나스주에서는 5월에 있을 전체 장례를 위해 약 6000개의 관을 준비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죽음은 슬퍼하고 애도할 대상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대상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사망자 비율은 2.3%로 다른 국가에 비해 낮기는 하나 국내에도 279명의 사망자가 존재한다. 잠시 소강되는 듯했던 코로나19 사태는 다시 하루 평균 확진자 50명 전후의 수치를 보이며 위협을 드러내고 있다. 무더위가 오면 잠잠해지리라는 예상과 달리 여름의 초입에서도 코로나19의 위세는 변함이 없다. 아무래도 코로나19는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가 일상 전반을 변화시키는 만큼 이곳저곳에서 코로나 이후의 삶과 코로나와 함께하는 삶, 뉴 노멀(New normal)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스텝이 있다.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는 어느 순간에 갑작스러운 변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예되었던 것들을 처리하면서 서서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거를, 그리고 우리의 감정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실한 사람들이 충분한 애도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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