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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정치’ 제대로 한번 해보자

남북문제로 당분간 소강상태를 보일지 모르겠지만 김종인발(發) 기본소득 논쟁은 2022년 대선까지 복지가 정치권의 화두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가 지난 4일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뒤 대선주자급 정치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고, 차기 대선의 주요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상당해 보인다.

오관철 경제에디터

오관철 경제에디터

현재 기본소득뿐 아니라 전 국민 고용보험, 2차 재난지원금, 전일 보육제 등 굵직한 복지 이슈를 둘러싸고 여야 가릴 것 없이 백가쟁명식 의견들이 분출하면서 정책 전선이 복잡하게 엉켜 있다. 2010년 무상급식, 2012년 대선에서의 경제민주화 논쟁 후 정치권에서 ‘복지정치’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코로나19로 취약계층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데다 14조원 규모의 긴급 재난지원금이 가져온 효과 때문이다. 복지정치가 정치인들의 구두 경쟁을 넘어 실질적 정책대결로 전개될 수 있을까.

새가 좌우 날개로 날 듯이 복지 이슈도 진보와 보수의 의식 편차가 좁혀져야 타협이 가능해진다. 이런 점에서 복지 얘기만 나오면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며 퍼주기라 비판하기 일쑤였던 미래통합당이 기본소득을 통해 이슈 선점에 나선 건 의미가 있다. 시민의 삶과 동떨어진 성장의 허망함을 깨닫고 앞으로 사회안전망 확대와 양극화 해소를 위한 비전을 내놓기 바란다. 그래야만 복지 이슈를 탈환하지 않고서는 존립이 어렵다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복지를 말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과 불신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지정치가 야심찬 포퓰리스트들의 이미지 제고용으로 악용되는 걸 방치해선 안 된다. 이는 여야에 공히 해당된다. 기본소득만 보더라도 제대로 도입하려면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기본소득은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개인에게, 보편적으로, 충분히 지급하는 현금으로 흔히 정의된다. 충분성을 두고 시민 1인당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여러 의견이 나오지만 한국에서 1~2년 안에 제대로 된 기본소득이 전면적으로 도입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이 지적했듯이 엄청난 규모의 재원 확보를 필요로 하며,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완전히 재정립해야 하며, 노동시장과 사회복지 제도 전반에서도 지각변동이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진보진영에서 섣부른 기본소득 도입을 경계하는 것도 현 복지체계의 구조조정을 대가로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기존 복지 수혜자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하는 걸 우려해서다.

현 복지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국가가 매달 일정 금액을 추가로 얹어주는 건 ‘홍길동식 기본소득’일 수 있지만 제대로 된 기본소득은 아니다. 이런 점을 국민들에게 설명하지 않고 현금 지원만 앞세운다면 표 얻기와 이미지 정치에만 몰두한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기본소득은 매력적이고 가치 있는 이상적 제도일 수 있으나 충분한 연구가 선행되지 않으면 자칫 상처만 입고 무대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2022년 대선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충분히 ‘쿠킹’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설픈 방안들이 중구난방식으로 제기된다면 시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전례 없는 위기 극복을 위해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장단기 과제를 분별할 수 있는 냉철한 이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제대로 된 복지정치는 정치인들의 솔직함을 요구한다. 재정의 틀을 흔드는 복지 이슈들이 구체적 재원 조달 방안 없이, 단편적으로 흘러나와선 안 된다. 한국사회의 복지를 어떤 모습으로 가져갈 것인지, 소요되는 재원이 어느 정도인지, 납세자들의 부담률을 얼마로 높여야 하는 건지 구체적 플랜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코로나19로 불가피하게 늘어나고 있는 재정을 충당하려면 어떤 식이든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많다.

우리는 입으로 복지 확대를 외치는 정치인들이 정작 자기 손에 피 묻히는 작업을 외면하는 모습을 많이 봐 왔다. 현실에서는 증세를 외치는 정치인이 바보나 돈키호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과세 합리화란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거나 ‘증세는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뽑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에 요리조리 증세 문제를 피해간들 결국은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증세를 당당하게 외칠 용기가 없다면 애당초 복지 확대를 쉽게 입에 올려선 안 된다. 복지정치의 무대에서 시민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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