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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당신의 ‘오복’을 갉아먹는 충치는…설탕과 구강세균의 합작품

  • 김응빈 교수

미생물과 구강건강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7)당신의 ‘오복’을 갉아먹는 충치는…설탕과 구강세균의 합작품

지난 9일은 ‘구강보건의날’이었다. 올해 일흔네 돌을 맞았으니 그 역사가 광복 이듬해인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치과의사회(대한치과의사협회의 전신)는 여섯 살 즈음에 나오기 시작하는 영구치를 잘 관리해 평생 건강하게 사용하자는 의미를 담아 어금니의 한자 구치(臼齒)의 ‘구’를 숫자화해 6월9일을 택했다고 한다. 2016년 정부는 구강보건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이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흔히 이가 좋은 건 오복에 든다고 한다. 나머지 네 가지가 궁금해 조사를 해보니, 오복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자료는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인 서경이었다. 이 고서에서는 행복한 인생의 조건으로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이렇게 다섯 가지를 말하고 있다. 장수와 부유함, 건강 다음에 나오는 유호덕은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함, 진정으로 남을 위한 베풂을 이르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고종명은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이른다. 치아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이가 좋아야만 건강할 수 있으니 건치는 오복의 하나를 넘어 그 기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령화시대를 맞이하여 더욱 그렇다.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잇몸주머니 속 생물막에 인위적으로 색을 입힌 사진. 구균과 간균, 나선균 등 다양한 세균이 엉겨있다. 위키미디아 제공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잇몸주머니 속 생물막에 인위적으로 색을 입힌 사진. 구균과 간균, 나선균 등 다양한 세균이 엉겨있다. 위키미디아 제공

먹거리가 널려있는 입속은
1000종 넘는 미생물들의 천국
치아 표면에 생기는 플라크는
충치 발생의 불길한 징조

■그곳에 살고 싶다

그곳에 가면 등 따습고 배부르다. 여기저기에서 졸졸졸 샘물이 흘러나온다. 먹거리는 온 천지에 널려 있다. 미끈한 돌산 밑동마다 아늑한 쉼터가 즐비하다. 한복판에 펼쳐진 폭신하고 널따란 평원은 또 다른 낙원이다. 아, 그곳에 살면 세상 부럽지 않다. 미생물 입장에서 상상해본 우리 입속 모습이다.

입은 우리가 식도락을 즐기는 곳이다. 미생물 먹이가 풍부한 건 당연한 일이다. 아울러 치아와 잇몸, 혀는 다양한 서식지를 제공한다. 실제로 입에는 어림잡아 1000여 가지에 달하는 미생물이 살고 있다. 이들은 하루에 1ℓ 정도 분비되는 침을 타고 입안 구석구석을 방랑한다. 찻숟가락 하나 분량의 침에 5억마리 정도의 미생물이 헤엄치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로 이갈이를 하고 나면, 간니(영구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평생을 버텨야 한다. 부위에 따라 짧게는 2주, 길게는 4주 정도 간격으로 재생되는 피부(떨어져 나간 피부세포와 미생물, 먼지 따위가 뒤섞인 게 ‘때’임)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래서 떨려나갈 위험에서 훨씬 자유로운 치아가 미생물 입주 0순위이다.

■미생물 도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2300여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말이다. 비대면과 거리 두기, 격리가 일상이 되어버린 요즈음,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이 말의 의미를 절감한다. 그런데 인간만 그런 게 아니다. 동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미생물까지도 그렇다.

자연환경에서 뿔뿔이 흩어져 외톨이로 사는 미생물은 거의 없다. 이들은 주로 한데 어울려 부대끼며 살아간다. ‘생물막(바이오필름·biofilm)’이 이런 생활 방식을 잘 보여준다. 생물막은 수분이 충분한 환경에 있는 고체 표면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비유로 설명하면, 생물막은 물풀(점액질)에 모래알(미생물)이 섞인 형태이다.

생물막은 다양한 미생물(주로 세균)이 조직화되어 함께 작용하는 기능 공동체이다. 여러 구성원이 협력하여 효율적으로 일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생물막은 인간 도시와 닮은꼴이다. 여기서 미생물은 저마다의 ‘생태지위’를 발휘한다. 생태지위란 어떤 생명체가 주어진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인간 사회로 치면 직업에 해당한다. 일자리에 따라 우리가 이사를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생물들도 수시로 생물막을 드나든다.

생물막을 지나는 미생물은 자기에게 맞는 생태지위가 있는지 먼저 탐색한 다음, 맞으면 자리를 잡는다. 이렇게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오고 또 이들이 자라면서 생물막은 양적, 질적으로 성장한다. 생물막을 이루는 미생물 집단은 흔히 기둥과 같은 구조를 만든다. 그러면 그 사이 공간을 통해 영양분의 유입과 노폐물의 배출이 가능해진다. 또한 생물막 일부가 주기적으로 떨어져나가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여 미생물 신도시를 건설한다.

■치아 생물막

치아 표면에 생기는 생물막은 구강 위생용품 광고에 단골로 등장한다. 바로 ‘치태(플라크)’이다. 치태는 충치 발생의 불길한 징조이다. 이 고약한 생물막은 보통 스트렙토코쿠스 뮤탄스(Streptococcus mutans)라는 세균이 붙으면서 시작된다. ‘충치균’으로 알려져 있는 뮤탄스는 설탕을 ‘냠냠’ 먹고 끈적끈적한 당류를 뱉어낸다. 이 설탕 마니아가 늘어날수록 끈끈이도 많아져 다양한 세균이 점점 더 많이 들러붙는다. 이렇게 치태가 축적되어 석회화되면 치석이 된다.

치태에는 400종 이상의 세균들이 엉겨 붙어 살고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설탕을 젖산으로 바꾸는 것들이 있다. 젖산은 치아 보호 코팅인 법랑질(에나멜)을 부식시킨다. 불소가 부족하면 법랑질은 산의 공격에 더 취약해진다. 치약에 불소를 넣는 이유이다.

침은 산을 중화시키고 희석시켜 젖산 공격에서 이를 보호한다. 또한 침에는 세균을 파괴하는 효소와 항균물질이 들어 있어 세균의 수를 줄여주기까지 한다. 치태는 침의 투과를 막는 장벽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안쪽에 있는 세균들은 편하게 일상 활동을 계속한다.

치태가 어느 정도 쌓이면 충치가 시작된다. 그냥 놔두면 충치균이 안으로 계속 파고들어간다. 부식이 잇속까지 퍼지게 되면 사태가 아주 심각해진다. 잇속에는 혈관과 신경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 자극에 예민하다. 쉽게 말해 많이 아프다는 얘기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종국에는 잇몸까지 상하게 되어 구강 건강이 총체적 난국에 빠지고 만다.

■흔한 감염병

고대의 인간 유골에서는
10명 중 1명꼴만 충치 보여
현대인의 과도한 설탕 섭취가
충치 발생 급증의 주범 지목

오늘날 충치는 인간에게 가장 흔한 감염병이다. 하지만 근대 이전에는 충치가 그다지 흔치 않았다. 더 오래전 시대를 살았던 인간 유골에서는 10명 가운데 1명꼴 정도로 충치가 보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식습관의 변화, 특히 과도한 설탕 섭취가 충치 발생 급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설탕은 여러 음식에 들어간다. 다행히 하루 세끼 식사를 통해 먹는 정도는 구강 건강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간식을 통해 연이어 들어오는 설탕이다. 이 덕분에 입속 설탕 마니아들은 하루 종일 파티를 즐긴다. 그럴수록 우리는 충치에 취약해진다. 무균동물 실험은 이런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입안에 미생물이 전혀 없는 실험동물은 설탕이 듬뿍 들어 있는 먹이를 계속 먹어도 충치가 생기지 않는다.

충치 예방의 기본은 설탕 섭취 절제와 올바른 양치이다. 요컨대 뮤탄스는 깨끗한 이에는 잘 붙지 못한다. 또 이 세균은 잇새와 잇몸주머니(이와 잇몸 사이의 틈새)처럼 침과 물양치 따위로 잘 씻겨나가지 않는 치아 부위를 좋아한다. 식후 올바른 양치질이 필요한 명확한 이유이다. 혹시라도 구강청정제 입가심만으로 어찌해보려는 생각은 얼른 접어두자. 공기청정기만으로 방 청소를 할 수 없음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기묘한 이야기

오복 중 하나로 꼽히는 건치
고령화시대 맞아 중요성 더해
‘귤과 탱자’ 고사처럼
먼저 미생물 탓만 말고
달콤한 중독에서 벗어나야

‘기묘하다’는 뜻의 영어 형용사 ‘WEIRD’를 약자로 쓰는 용어를 풀어보면 ‘교육 수준이 높고 산업이 발달했으며 부유하고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서양(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and Democratic)’을 뜻한다. 이 지역 인구는 전 세계의 13%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많은 분야의 학술 연구가 주로 이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왔다. 구강미생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2018년, 현대 문명과 상당히 떨어져 각각 수렵과 농경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구강미생물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수렵인은 서구인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종류의 미생물을 머금고 있다. 농경인의 구강미생물 다양성은 이 둘 사이 중간쯤에 위치한다. 그동안 입속에 사는 미생물 종류가 늘어나는 것은 구강 건강이 약해지는 증거로 간주했다. 정기 청소를 하듯이 주기적으로 구강미생물 생태계를 전면 재정비하는 게 좋다고 믿었다. 물론 ‘WEIRD 사람’ 기준이다.

이 연구에서 조사한 수렵인은 모두 건강한 치아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유해균 내지 병원균으로 여겼던 미생물이 이들 자연인에서는 평범한 구성원으로 어엿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충치나 잇몸병을 일으키는 불량 미생물도 환경 조건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얘기이다. 학창 시절에 배운 고사가 하나 떠오른다.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유명한 재상이 사신으로 초나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제나라 출신 절도범을 끌어다놓고 왕이 물었다. “죄인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제나라에서 왔다고 답하자, 이번에는 그 재상에게 물었다. “제나라 사람들은 본래 도둑질을 잘 합니까?” 재상이 답했다. “강남에서 자라는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저 사람도 원래는 선량했는데, 여기에 와서 도둑이 되고 만 것 같습니다.” 유세를 부리려던 왕은 정중히 사과를 했다고 한다.

보통 감염병은 외부에서 침투한 특정 병원체가 일으킨다. 이에 반해 충치와 잇몸병의 원인은 입안에 살고 있는 미생물이 제공한다. 하지만 범인을 콕 집어 말하기는 힘들다. 구강미생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동적이고 기묘한 관계가 어그러져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강보건 비법 터득은 미생물 자체보다는 이들의 관계 이해에 있을 것 같다. ‘남귤북지(南橘北枳)’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7)당신의 ‘오복’을 갉아먹는 충치는…설탕과 구강세균의 합작품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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