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화상 정상회담서 발언…군사 긴장, 대화 재개로 전환
청와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의견 전달…미국도 공감”
적극적인 행동으로 비핵화 모멘텀 잇고 ‘북·미 리스크’ 관리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북·미 간 대화 노력이 한 번 더 추진될 필요가 있다”며 “한국 역시 미 대선 이전에 북·미가 다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의 한·EU 화상 정상회담에서 “그간 어렵게 이룬 남북관계의 진전과 성과를 다시 뒤로 돌릴 수 없다는 게 나의 확고한 의지다. 인내심을 갖고 남·북·미 간 대화 모멘텀 유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1일 전했다.
미 대선까지 북·미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 힘들 것이라는 일반적 관측과 달리 대선 전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문 대통령이 적극적인 중재 행보에 나설 뜻을 공식화한 것이다. 올해 들어 독자적인 남북협력 프로그램 가동을 강조했던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남 군사조치 보류 지시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국면에 북·미 대화 필요성을 밝힌 것이어서 주목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언급한 ‘북·미 대화’의 성격을 묻자 “북·미 정상회담을 의미한다”고 했다. 북·미 정상회담 재개를 위한 문 대통령 역할에 대해선 “지금 경색돼 있고 매듭이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 북·미 간 대화”라며 “북·미 회담을 통해 결국 핵 문제도 해결되고 대북 제재 문제도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남북 간 군사적 긴장 고조도 결국 북·미 대화 교착 때문이고, 북·미 비핵화 협상 진전으로 대북 제재 문제가 풀려야 국면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생각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며 “미국도 문 대통령 생각에 공감하고 있고,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뜻을 미국에 전달한 시점에 대해선 “북측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한 이후”라고 했다. 지난달 16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후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한·미 간 물밑 접촉과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대남 군사조치 보류 결정으로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교두보를 확보해야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건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측 기류 변화를 읽고 적극적인 북·미 중재에 시동을 걸었다는 추측도 나온다. 대선 레이스에서 수세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 치적으로 내세운 북·미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군사적 도발에 나설 경우 재선 가도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대선 레이스에서 반전을 노리는 입장에서도 북·미 정상회담은 매력적인 카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도 이날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럼 ‘격동의 한반도, 문정인·이종석 대담’에서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이 가능할까, 좀 회의적인 생각이 들지만 미국 쪽에서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고무적인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미 국익연구소 한국 담당 국장인 해리 카지아니스가 폭스뉴스에 쓴 칼럼을 언급하며 “칼럼의 기본적 주장은 트럼프가 대선에서 불리한 구도에 있고 외교적 성과가 없는데, 대선 전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서 외교적 돌파구를 만든다고 하면 중국을 대하는 데 있어 미국이 훨씬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이어 “카지아니스 국장이 보수적이고 워싱턴 기류를 잘 아는 입장에서 중국 변수를 들며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고무적인 게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