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주말이면 동네 뒷산인 성미산 약수터에서 친구들과 야구를 했다. 작가도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기는 했으나 사실은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리틀야구를 배우는 친구들보다 야구도 그럭저럭 잘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야구를 TV로만 보고 가끔 야구장에 가서 치맥을 하는, ‘야구를 좋아하는 그냥 아저씨’가 되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아홉 살 즈음에 어머니께 진지하게 물었다. 야구부가 있는 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며. 어머니는 그때 “한 달에 100만원은 들 텐데 우리는 그런 돈이 없어”라며 역시나 진지하게 답했다. 실제로 그러한지는 알 길이 없으나 1990년대 초반의 100만원은 정말로 큰돈이었다. 나는 그 즉시 야구부 입단을 포기했다. 그에 더해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는데, 야구부에 들어가면 야구방망이로 참 많이 맞는다는 이야기를 친구들끼리 많이 나누었던 것이다. 하키부가 있는 인근 고등학교는 하키채로 맞고, 검도부는 죽도로 맞고, 이래저래 운동은 맞아가며 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두가 당연히 감각하고 있었다.
나는 야구부 대신 아람단에 들어갔다. 첫 집회가 끝나고, 6학년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4학년과 5학년을 소집해 기합을 주는 것이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한참을 엎드려 있거나,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거나, 차렷자세로 서 있거나, 해야 했다. 2박3일의 극기훈련을 간다고 하면 그어린 나이에도 ‘혼나러 가는구나’ 하는 두려움이 항상 있었다. 한 번은 나의 담임교사이기도 했던 아람단 지도교사가 6학년들이 모두를 모아두고 기합을 주는 장면을 보았다. 나는 그때 구원받은 기분이 되었으나, 그는 곧 6학년들에게 “어허, 적당히 해야지. 너네도 5학년 때 제대로 했어?”와 같은 말을 장난스럽게 하고 사라졌다. 묵인과 방조를 넘어서, 어쩌면 승인하고 권장하는 것이었다. 내가 야만이라 여긴 이 폭력은 대한민국에 사는 누구나 겪어야 할 성장서사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나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을 보면 기쁘면서도 그가 얼마나 고생했을지가 함께 떠올라 슬퍼진다. 즉 얼마나 많이 맞았을까, 하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이제 그는 어떠한 지도자가 될까, 하는 걱정도 함께다. 그것이 극히 일부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나는 선수 육성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그러한 방식이 효과적이라 해도, 올림픽에서의 메달이 그 국가의 격을 끌어올리는 것도 아니다. 예선에서 탈락하든 금메달을 목에 걸든 개인으로서 행복하게 운동한 누군가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사실 그 나라의 진정한 국격일 것이다.
엘리트 체육뿐만 아니라 폭력으로 개인을 통제하고 계발하려 하는 야만이 어디에나 존재한다. 학교, 군대, 회사, 가정, 개인과 개인이 만나 사회를 이루는 모든 곳이 그렇다. 개인은 쉽게 폭력에 굴복하고 거기에 동화되는 나약한 존재지만, 동시에 그에 저항할 수 있는 강인한 존재이기도 하다. 내가 5학년이 되었을 때 6학년이 된 아람단 선배는 모두를 모아두고 “다 엎드려!” 하고 외치다가, 곧 “아니야, 미안하다. 다들 일어나” 하고는 방에서 나갔다. 그는 조직 문화를 바꾸진 못했지만 적어도 그 순간 모두의 마음에 하나의 물음표를 심었다. 6학년이 된 난 “다…” 하고 말하는 대신, 도망 다녔던 것 같다. 회피는 비겁한 방식이긴 하지만, 나처럼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는 야구를 좋아하는 ‘그냥 아저씨’일 뿐이지만, 적어도 야구선수가 될 수 있을 누군가들을 위해 내 주변을 조금은 바꿔 나가고 싶다. 특히 선수들의 메달이나 성적보다는 하고 싶은 운동을 하고 자신을 계발해 나가는 그들의 행복한 웃음에서 나 역시 개인의 격을 배우고 국가의 격을 찾고 싶다. 나의 아이가 맞는 게 두려워 자신의 꿈에 도전하지 못하는 일은 없으면 한다. 고 최숙현씨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