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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여서 놀랐다

예전 초등학교 앞엔 행상들이 많이 몰려왔다. 병아리 장수에 해삼과 멍게 리어카, 온갖 야바위꾼들과 과일 행상도 등장했다. 선생님들은 종례를 하며 몇 가지 당부를 하곤 했는데 “복숭아 사먹지 말라”는 말씀도 있었다. 솎아낸 풋복숭아 먹고 배탈 나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복숭아는 여름이 완전히 무르익어서 땡볕에 시달릴 무렵에 나와야 제맛이었다. 그 농익은 백도, 황도의 향기가 아찔할 정도로 시장에 가득 차던 날들이 있었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이제는 그런 향이 시장에도 마트에도 드문 것 같다. 혹자는 제철을 모르는 과일이라 향도 적다고들 한다. 과일에 제철 없어진 지 오래다. 자두-복숭아-포도-사과-감으로 이어지는 전통의 순서(?)가 없어졌다. 품종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런 순서는 계절감으로 살아가던 오랜 인간의 관습과 맞아떨어졌다. 어른들이 이제 무얼 먹을 철이네, 하시면 어김없이 시장에 그 작물이 나오곤 했으니까. 이젠 수입과일과 마구 뒤섞여 제철의 과일이 무언지 아이들은 알 수도 없다.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에서 과일들이 쏟아져 나와 그렇기도 하다. 남반구인 칠레산 포도가 대표적인데, 당최 이 ‘글로벌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얼 계절로 알고 살아가는지 모를 일이다. 며칠 전에 약간의 경악이 내게 밀려왔다. 내 몸이 “아, 체리가 먹고 싶군” 하고 반응한 것이었다. 자두도, 수박도, 복숭아도 아니고 체리라니. 이맘때 미국산 워싱턴체리가 수입되어 많이 풀리는데, 그걸 몇 해고 먹었더니 몸이 먼저 기억한 셈이다. 이제 과일의 기억도 수입인가 싶어 입맛이 썼다.

제철이 이렇게 흔들리고 과일의 출시가 전통적 계절감과 다르다고 마냥 슬퍼할 건 아니다. 생각해보면, 이 또한 농민들의 피땀이 서린 일이다. 그나마 더 나은 값을 받기 위해 시간과의 싸움을 벌인 결과다. 더 빨리 익는 종을 사고, 반사판을 놔서 빛을 더 쬐게 하고, 비닐을 씌워 온도를 높이는 온갖 노력으로 제철을 거슬러왔다고 해야 하겠다. 귤만 해도 그렇다. 하우스귤이란 게 나오고, 요즘에는 감귤류의 여러 종자들이 자라서 한여름에 수확해 파는 신품종이 나온다. 세미놀이라는 놈인데, 놀랍게도 풍성한 즙과 한겨울 귤 같은 새콤하고도 단맛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게다가 오래 두어도 곰팡이가 핀다거나 잘 무르지도 않는다.

전통적 계절 과일은 그것대로 가치 있지만, 이제 세상이 바뀐 것을 수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 시대를 막 살아가기 시작한 어린 친구들은 그들이 기억하는 다른 계절감을 몸에 새기겠지만. 그렇게 세상이 변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닐 거다.

아, 벌써 캠벨과 만생종인 거봉이 시장에 나온다. 다음주에 큰비가 어지간하게 그치면 올여름과 초가을 포도도 맛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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