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택배연대노조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오는 8월 14일을 택배없는 날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국내 택배업은 1992년 한진택배의 ‘파발마’가 시작이었다. 1994년 대한통운과 이듬해 현대택배가 차례로 뛰어들고, 1990년대 중반 홈쇼핑 출범이라는 날개를 달면서 택배업은 IMF 외환위기까지 뚫고 성장을 거듭했다. 여러 업체가 경쟁하던 2000년대 택배업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렸다.
1999년 7900만개였던 연간 택배 물량은 2000년 1억개를 돌파한 뒤 2009년엔 10억개, 지난해엔 28억개를 넘었다. 지난해 국민 1명이 연평균 54회 택배서비스를 이용했다. 택배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택배업은 다시 한 차원 높은 특수를 누리고 있다. 그사이 택배기사들의 노동환경은 급속도로 열악해졌다. 올해 사망한 택배노동자 4명의 근무 기록엔 살인적인 노동강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건당 700~800원을 받고 많게는 1분30초에 한 개씩, 하루 평균 13시간 일하며 주 6일 매일 400개의 상자를 배달했다. 개인 사업자 신분인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돼 주 52시간 근무제에 해당되지 않는다. 보통 기업의 노동자들이 누리는 복지는커녕,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을 개인이 져야 한다. 병원에 가려면 일당의 3배에 이르는 금액으로 대체 인력을 써야 한다. 아파도 참아가며 숨 돌릴 새 없이 일하다 쓰러지고 있는 것이 택배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다음달 14일이 ‘택배 없는 날’로 결정됐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기사들의 휴식이 시급하다고 촉구한 끝에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이를 받아들였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 로젠이 참여한다. 택배업이 시작된 이래 28년 만의 첫 공식 휴가다. 온라인상에서는 ‘8월14일_택배없는날’ 해시태그 운동과 8월13일 택배를 주문하지 않겠다는 약속, 불편해도 괜찮다는 시민들의 연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트위터에 “기사님들이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응원해 달라”고 밝혔다. 4만명의 택배노동자들이 맞는 첫 공식 휴가를 축하한다. 이 휴가가 단순히 하루의 휴식을 넘어 17년째 동결 중인 택배노동자 수수료와 장시간 노동, 고용안정 문제 등의 해법을 찾는 첫걸음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