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전환” “새로운 100년의 설계” “160조원.” 거대한 수사와 숫자를 동원했지만 한국판 뉴딜은 여전히 ‘성장’ 패러다임의 착실한 추종자다. 디지털 뉴딜은 물론이고 ‘그린’ 뉴딜도 방점은 성장에 찍혔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판 뉴딜로서는 자가당착이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재난 뒤에는 기후위기를 비롯한 자연생태계의 훼손, 탈규제 자본주의를 앞세워 값싼 노동력과 자원을 찾아 지구를 헤집어 놓은 세계화 경제, 우리에게 군림하는 성장지상주의가 차례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코로나 이후를 제대로 준비하려면 코로나19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싸워 극복해야 할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아니라 산업화 이후 줄곧 진보와 발전으로 여겼던 경제성장 자체에 보내는 긴급 경고음이다. 바이러스 재난의 근본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극복할 대상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며, 싸워야 할 것은 사람과 자연을 철저히 도구화하여 끝없이 이윤과 풍요를 좇는 탐욕의 체제다. 코로나19는 헛된 성장 신화에서 우리를 깨우는 죽비소리다. 죽비소리엔 귀를 막고 죽비만 없애려는 우를 언제까지 범할 건가.
한국판 뉴딜은 ‘선도’를 반복해 강조한다. 선도 자체보다 그 방향과 목표가 중요하다. “선도형 경제”와 “선도 국가”가 미국이나 일본을 따라잡는 것인가? 코로나19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한국판 뉴딜은 성장에서 지속 가능성으로의 전환을 선도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요구되는 “대한민국 대전환”이다. 그러려면 그린 뉴딜은 한국판 뉴딜의 일부가 아니라 중심이 되어 뉴딜 전체를 선도해야 한다. ‘그린’은 모호한 “탄소 중립 지향”이 아니라 명확한 ‘2050년 넷제로’를 가리킨다. 한국판 뉴딜은 애매한 “저탄소 경제”가 아니라 ‘바로 이’ 그린을 원리와 기초로 추진하는 정의롭고 근원적 전환이어야 한다. “160조”라는 돈으로만 될 일이 아니다. 대량 생산, 유통, 소비, 폐기에 기초한 생활양식의 문제다. 다른 길이 없다. 전혀 다른 길을 상상하고 고민하고 결단해야 한다.
그린 뉴딜에 농업이 보이질 않는다. 정부의 농촌 홀대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에서 산업농의 비중, 기후변화 또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국제적 단절이 초래할 식량위기, 농업과 농촌의 생태적 가치와 기여를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다. 농업이 철저히 홀대당한 그린 뉴딜에서 자동차가 총아로 떠올랐다. 비중이 가장 큰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사업은 전기차와 수소차 133만대를 보급한다. ‘현대차’에 안성맞춤이다.
그린 뉴딜을 장착한 한국판 뉴딜이 성장의 굴레를 벗고 지속 가능한 세상으로 가는 첫걸음이길 바랐던 실낱같은 기대가 사라졌다. 하긴, 그린벨트 해제 논란을 보면 기대 자체가 무리였다. 대통령의 ‘보전’ 결론으로 봉합되었지만, ‘그린’에 대한 이 정권의 인식 수준은 훤히 드러났다. 분위기가 조금만 달랐다면 결론도 완전히 달라졌다. 그린벨트의 운명은 그 목적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상황이 좌우한다. 자본과 정치에 소비되며 ‘녹색’이 그랬듯 ‘그린’도 본연의 의미를 잃고 있다. 정명(正名)이 아니면 실명(失名)한다. ‘그린’을 순환과 공생의 상징으로 ‘보전’하기 위해서 분명히 말해야겠다. “이것은 그린 뉴딜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