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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인지예산에 대한 고민

입력 2020.07.28 03:00

수정 2020.07.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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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국회에서 예산 검토를 도울 일이 있었다. 부처별로 수천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예산서들 틈에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성인지예산서였다. 성인지예산은 성평등 기대효과, 성별 수혜분석 등 기존 예산을 성평등의 관점에서 바라본 내용으로 국가재정법과 함께 도입되었다. 물론 그 내용이 현실을 전부 반영할 수는 없었지만, 이러한 분석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이렇게 성평등의 관점에서 예산을 감시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예산이 성평등하게 배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총희 회계사

이총희 회계사

행정수도를 두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아지는 요즘 성인지예산과 같이 지역인지예산제도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역인지예산이 도입되는 것을 반대할 의원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매번 예산 심사가 끝날 때마다 자신의 지역을 위해 이만큼 예산을 따냈다고 자랑하는 의원들인 만큼 지역별로 예산이 미치는 효과를 분석해 준다면 더 좋아할 것이다. 물론 의원님들 좋자고 지역인지예산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지역인지예산을 통해 특정 지역에 편중되는 예산을 경계하고, 수도권에 대한 지나친 집중화를 막는 것이 목표다.

좋은 것은 누구나 가지고 싶고, 좋은 곳에는 누구나 살고 싶다. 좋다는 것은 개인의 선호이기 때문에 좋은 곳이 취향마다 다르면 좋으련만, 우리나라는 교육부터 부동산까지 순위를 매기기 좋아하는지라 좋은 자리가 희소하다. 그래서 좋은 곳의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좋은 곳은 예산이 많이 투입되는 곳이다. 국가가 예산을 투입하면 대체로 좋아진다. 논밭이던 강남이 개발되어 욕망의 중심지가 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정부 주도의 예산 투입이 있었다. 현 정부 들어 집값이 급등한 곳들을 보면 대부분 대중교통과 관련한 개발호재들이 있다. 집값을 올리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을 봐도 민원을 통해 좋은 시설은 끌어들이고, 나쁜 시설은 쫓아낸다. 시설이 오고가는 것은 거주자들의 돈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예산으로 이루어진다.

교육, 인프라, 주거 환경 등 부동산이 오르는 데 예산의 힘은 매우 크지만, 예산은 투명하지 않다. 똑똑한 지역민일수록, 이재에 밝은 사람들일수록 공적인 예산을 자신의 지역을 위해 사용하고, 그에 따른 이익은 사유화하려고 한다. 국회에서 예산 심사를 지켜보며 느낀 것은 예산이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올바르게 배분되지 못하고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국회는 서울에 있고, 인구도 서울에 많고, 기업도, 대학도 서울에 몰려 있다. 예산이 서울에 집중되기 좋은 구조라 서울은 점점 살기 좋아질 것이다.

수도권의 지방세 수입액은 48조원(지방세통계연감 2018 실적 기준)가량이고 서울시 1년 예산은 40조원에 가깝다. 이제 수도권은 비대해져 중앙정부의 예산 투입이 줄어들어도 어느 정도의 재정을 꾸릴 여력이 된다. 하지만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서울에 계속해서 예산을 투입한다면 서울로 사람들은 더 몰려들게 되고, 다시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인구가 적은 지역은 덜 중요하다며 예산 투입이 후순위로 밀리고, 예산이 뒤로 밀리니 인구는 더 줄어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전형적 형태가 나오게 된다.

예산은 배분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 다만 서울은 집적 이익이 큰 것보다, 불이익이 점점 더 커져가는 상황인 것 같다. 지역인지예산을 통해 서울처럼 살기 좋은 도시를 지역에도 여러 개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 충분한 예산이 투입된다면 가능한 일이고, 지역이 살아난다면 서울의 집중화를 조금은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에서도 파편화된 예산 일부를 가져가는 것으로 만족할 게 아니라 큰 틀에서 형평에 맞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행정수도를 옮기는 일이 큰일이라면, 지역기반으로 예산을 추적하고 그 배분의 형평성을 높이는 것은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작은 일부터 한발씩 나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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