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스·휴스턴·디트로이트 등 유색인종 많은 도시
정유시설 등 환경오염에 저항 커…공권력 우회 지원
미국 석유회사들이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와 텍사스주 휴스턴,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등 대도시 경찰을 후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도시들은 환경오염과 인종차별 문제를 두고 시민들의 항의 목소리가 큰 곳들이다. 어떤 곳은 환경오염이 곧 인종적 불균형을 드러내기도 한다. 환경·인권단체들은 석유회사와 경찰의 ‘결탁’은 이러한 항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공동의 목적에 근거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비정부기구(NGO)들과 각국 정부 출연기관들의 공공 감시 프로젝트인 ‘리틀시스’가 27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석유·가스회사인 셰브론은 뉴올리언스 경찰재단의 후원 기업이고, 휴스턴 경찰재단 이사회 멤버이다. 또 다른 석유회사 셸은 뉴올리언스 경찰재단의 ‘파트너 기업’이며 휴스턴 기마 경찰의 후원사다. 정유 업체 마라톤 페트롤리엄 소속의 보안 조정관은 디트로이트 경찰재단 이사로 있다.
경찰재단은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데, 이 후원금은 대개 경찰의 훈련과 무기·장비 구입, 감시기술 향상을 위해 쓰인다. 또 재단은 해마다 경찰을 위한 대규모 행사를 열어 대중 앞에 경찰 권위를 세우는 데 일조한다.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예산 집행에 관한 엄밀한 감시도 없다.
환경단체들은 후원 기업들이 세계적인 ‘오염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휴스턴 등에 정유시설을 둔 셰브론은 오염물질 벤젠을 많이 배출하기로 악명이 높다. 뉴올리언스와 배턴루지를 지나는 미시시피강 유역에는 대규모 정유시설이 들어선 후 암 환자가 많이 나와 ‘암의 골목’이라 불리는데, 셸도 이 지역에 정유시설을 뒀다.
마라톤 페트롤리엄은 디트로이트에 16개 정유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정유 공장들에서 2013년 이래 환경 규제를 위반해 적발된 것만 15건이다. 이 도시 시민들이 환경오염의 책임을 묻기 위한 집회를 열거나, 석유 시설 파괴 운동을 벌일 때 경찰이 진압에 나서게 된다. 리틀시스는 “기업들은 경찰과 긴밀한 유대를 형성할 동기가 있다. 경찰 권력은 기업의 이익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해당 보고서를 인용해 “에너지 기업들이 경찰 권력의 힘을 키워준 것”이라고 했다. 셰브론 측은 경찰 후원 목적과 관련해 가디언에 “사업을 하는 지역 이웃에 대한 후원”이라고 밝혔고, 마라톤 페트롤리엄은 “기부를 통해 디트로이트 지역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셸 측은 응답하지 않았다.
리틀시스 측은 에너지 기업들이 유색인종 거주지의 환경오염을 심화시켰으며, 이 또한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실제 뉴올리언스(인구 60%가 흑인), 디트로이트(80%) 모두 코로나19 사망자가 많이 나온 곳이다. 주민 중 비만과 당뇨, 고혈압 등 기저질환을 앓는 비율이 높았는데, 인종 간 건강 불균형에 환경오염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캐럴 머펫 국제환경법센터장은 “이번 보고서는 경찰의 인종차별과 기업들의 환경 부정의가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지난 5월 백인 경찰관의 가혹행위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후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이른바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로버트 불라드 전국흑인환경정의네트워크 대표는 “최근 BLM 시위는 형사사법제도의 구조적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이면서 경제적 불평등, 환경문제에 대한 항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