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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절에도 휴가는 갑니다

참 수상한 여름이다. 여름이 그 계절 같지 않다. 더위와 장마가 뒤섞인 하루하루는 그대로지만 생활은 모두 엉클어진다. ‘여름, 방학, 휴가, 바다’로 설렘이 파도를 타던 그 여름과는 사뭇 다르다.

김광호 기획에디터 겸 문화부장

김광호 기획에디터 겸 문화부장

우선 방학부터 그 ‘여름의 연상(聯想)’을 툭 끊어 놓는다. 무척 짧기도 하지만, 가족들마다 모두 다르다. 이전엔 학원 등 방학에도 멈출 수 없는 학습 부담 때문이었지만, 올해는 아예 엇갈린다. 막내는 8월 초부터 3주, 교사인 아내는 8월 초부터 2주인데, 고등학생인 둘째는 8월 중순이 되어야 방학이 시작된다. 공유할 시간이 턱없다.

그래서 휴가도 갈피를 잡기 힘들다. 잘 묻지도 않지만, “휴가는…”이라고 주변에 인사치레라도 할라치면 돌아오는 건 오히려 질문이다. “어디로 가야 좋을까요. 갈 수나 있나?” 한숨도 더해진다. 가족들의 엇갈린 시간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갈 곳이 드물다. 바다도 산도 ‘두려움’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철든 이래 첫 방학 없는, 휴가 없는, 분명한 쉼표가 없는 여름이 될지 모르겠다. 여름답지도, 방학답지도, 휴가답지도, 모든 게 ‘답지도 않은’ 그런 드문 여름 말이다. 코로나의 시절은 하루치씩의 일상 감각만 아니라 계절 감각도 흔들어 놓았다.

방역당국은 지난 20일 “올여름 휴가는 안전한 집에서 독서로” 보내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레 권고했다. “사람이 많은 휴가지보다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조언도 더했다. 정부가 휴가마저 간섭하는 것 같아 슬그머니 어깃장을 놓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정부 제안과 상관없이 코로나 시절만의 ‘휴가’를 한번 상상해 보는 것도 괜찮다 싶다.

‘휴가=여행’이란 딱 박힌 공식만 슬쩍 벗어난다면 해볼 만한 건 그래도 꽤 있지 않을까. “여행한다는 건 방랑한다는 뜻이고…, 좋은 나그네는 자기가 이제부터 어디로 갈 것인가를 모르는 법”(린위탕 <생활의 발견>)이라 하지 않나. 어쩌면 우리는 처음으로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우리 상상력 속으로 떠날 기회를 가지게 된 건지도 모른다.

코로나 시절엔 ‘문화 휴가’를 떠나보는 건 어떤가. “이번 여름은 문화 휴가다”라고 외치며 위안 삼아 보는 건 어떨까.

하루 종일 책 속에 푹 빠져보거나, 걷는 걸 좋아한다면 서울 둘레길 정복에 도전해 “대지라는 책을 읽는 일”에 몰두할 수도 있겠다. 또 마스크를 쓴 채 홀로 영화관이나 전시장을 찾는 것도 나름 폼나지 않는가. 지방자치단체들의 ‘온라인 동네걷기’ 아이디어를 빌려와 집 주변 소소한 곳을 돌아다니며 나만의 ‘먹방 투어’ 인증을 하는 재미도 쏠쏠할 듯싶다. 오랜 친구를 초대해 밤이 깊도록 수다를 나눌 수도 있겠다. ‘방콕 액티비티’부터 ‘문화 체험’까지. 거리 두기가 이 시절의 요구라면 그것에 상상력을 더해 ‘위안 이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휴가’라는 언어에 새로운 가능성을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문화 휴가’가 정말 문화적이기 위해선, 그리고 코로나 시절을 슬기롭게 나는 특이점이려면 그저 모습만 달리하는 정도여선 의미가 약하다. 왠지 코로나에 굴복당한 거 같지 않은가.

어쩔 수 없는 거리 두기와 고립 속에서도 랜선을 통해 서로 연결하고 확장한 것처럼, ‘문화 휴가’의 상상력이 사람 사이 관계와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면 더 훌륭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여행이란 형식에 가렸던 내밀한 연결과 소통이 도드라질 수 있다.

‘게임하기’와 ‘책읽기’를 초등학생 막내와 교환해보는 건 어떤가. 책이 무거울 필요도 없다. 하루쯤 온 ‘방구석 만화 카페’를 열어봄직도 하다. 가족 각각의 ‘날’을 정해 그날은 그의 뜻대로 하루를 구성해 보는 것도 가능하겠다. 어쩌면 ‘코로나 휴가’는 가족들이 정말 하고 싶은 걸 깨닫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봄은 불안이며 여름은 기쁨이고, 가을은 충만하며 겨울은 고독하다. 계절은 이처럼 시절 감각을 우리 몸에 새기고 있지만, 올해는 모든 계절이 불안이다. 그래서 여름 앞에서도 어리둥절하고 초조하다.

지금 인류를 지탱하는 건 그동안 잊었던 인간 본연의 힘, 마음의 힘이다. 그 성분은 팔할이 사랑이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그것에 ‘이해·소통·표현’ 같은 부재료들이 더해져 마음의 힘은 더 강하고 풍성해진다. 문화는 그에 딱 맞는 촉매일 것이다. 마음들이, 다양한 상상력이 만나는 것, 코로나 시절의 ‘문화 휴가’가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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