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무섭게 내렸다. 전국 곳곳에서 많은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이렇게 비가 올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소낙비가 내렸다. 피해 소식을 전하는 뉴스들 속에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있었다.
폭우로 대피한 이재민의 80%가 외국인이라는 기사였다. 집중호우로 경기도 이천의 한 저수지가 붕괴되면서 근처 논밭이 물에 잠겼는데, 인근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가 대부분 논밭에 있는 비닐하우스라서 이재민이 많이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얼마 전 국회에서 ‘임대차 3법’이 여당의 주도로 신속하게 통과되었다. 앞으로 한국에 전세가 소멸될 것이라는 순진한 주장이 널리 회자되고, 임대인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남용해 임차인에게 공정거래 위반행위(임대인 갑질)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은 사유재산에 대한 정부의 위헌적 개입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공공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임차인으로서 이번 법은 그동안 법에는 있었지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주거인의 권리’를 만드는 출발이란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주거의 권리가 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널리 보장되길 희망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해서 말이다. 주거권이 인간의 권리(人權)라면 외국인도 사람인 이상 당연하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현실은 오랫동안 개선되지 못했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 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85% 이상이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와 같은 임시시설을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후 7년 동안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여전히 현실은 그대로다. 아니 더 나빠졌다. 2017년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와 같은 임시시설도 숙소에 해당’하며, ‘사용자는 외국인 노동자 월급의 최대 13%까지 숙소비로 공제할 수 있다’는 공식적인 지침을 발표했다. 정책이 갑질하고 있는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으니 현장이 바뀔 리 없다.
지금도 외국인 노동자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휴식을 보장받을 수 없는 열악한 숙소에서 살고 있다. 다행히 이번에는 아직까지 인명피해가 없다. 하지만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가 빈발하고 있어 심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안정적인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적정한 임대료 상한선을 법으로 정하는 나라에서, 누군가는 비가 오는 저녁이면 살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하는 비닐하우스에 살면서도 매달 수십만원의 월세를 낸다. 둘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지 않은가.
해결 방법은 어렵지 않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곳은 숙소로 인정하지 않아야 하고, 제대로 된 숙소를 갖추지 못한 일터는 노동자를 고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캐나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가 부족해진 지금이 잘못된 제도를 바꿀 기회일 수 있다. 더 이상 논밭에서 사람을 재워선 안 된다. 정부의 신속한 결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