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마을 주택 지붕 위에서 119대원들이 소를 구조하고 있다. 주변 축사에서 사육하던 이 소는 최근 폭우와 하천 범람으로 물에 떠다니다가 지붕 위로 피신한 뒤, 물이 빠지면서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다. 연합뉴스
“내가 전에 봉화 장에 갔다가 집에 올 때 잠들었어요. 이렇게 하고 일어나 보니까 집이야.” 경북 봉화의 산골 마을에 사는 팔순 노인과 마흔 살 소의 이별 이야기를 그린 독립영화 <워낭소리>. 노인은 늙은 소를 내다 팔려다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막걸리 한잔 걸치며 소가 얼마나 영물(靈物)인지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술에 취한 자신을 태운 달구지를 끌고 차들을 피해 집까지 알아서 돌아왔다는 것이다.
예부터 소는 끈기와 강인함을 상징했다. 농사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가축으로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해오며 만들어진 이미지다. 중국인들은 소의 느릿느릿 걷는 모습에서 유유자적하는 도인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했다. 소 같은 사람이란 말도 성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칭찬의 표현이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호랑이와 싸워 주인을 구한 의로운 소에 대한 설화는 소의 우직함을 보여준다.
최근 섬진강 홍수 속에서 살아남은 소들을 보면 영물이란 말에 더욱 수긍이 간다.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마을에서는 물을 피해 주택 지붕 위로 올라온 소 9마리가 카메라에 잡히는 등 곳곳에서 ‘지붕 위의 소’가 발견됐다. 이틀을 굶으며 마취 총에 맞을 때까지 지붕 위에서 버티던 암소 한 마리는 다음날 새벽 홀로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바다를 헤엄쳐 건너 살아남은 소들도 있다. 구례에서 섬진강 급류에 휩쓸렸던 암소 한 마리는 67㎞를 헤엄쳐 사흘 만에 경남 남해군의 한 무인도에서 구조됐다. 이 암소도 새끼를 밴 상태였다. 자식을 살리려는 어미의 마음은 소도 사람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우생마사(牛生馬死)’라고 했다. 물에 빠졌을 때 말은 제힘만 믿고 거슬러 헤엄치다가 제풀에 지쳐 죽지만, 소는 물살에 순응하며 떠내려가다 물가에 닿아 목숨을 구한다는 말이다.
구례군 토지면의 축사를 탈출한 소 10여마리는 홍수를 피해 산 위의 절을 찾아갔다. 10㎞가 넘는 길을 걸어 문척면 사성암에 이른 소들은 대웅전 앞에서 조용히 풀을 뜯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우이독경(牛耳讀經·소 귀에 경 읽기)’ 풍경이 빚어졌지만, 그 뜻과는 정반대다. 한낱 축생(畜生)으로만 여겼던 소를 다시 보게 되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