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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과 감사

입력 2020.08.14 03:00

수정 2020.08.1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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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원한’이 정의, 특히 공정이라는 권리 언어로 폭발하고 있다. 들어보면 내 정당한 몫을 내놓으라고 부르짖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왜 가치 있는지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여년을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에 내몰려 얄팍한 경제언어로 살아온 탓이다. 한국 사회가 혹독하게 경험하고 있듯이, 신자유주의 경쟁체제 아래에서는 소수의 시장만 빼고 대부분 시장이 가격경쟁에 내몰린다. 온갖 비정규직을 제도화하고 생산단가를 떨어트려 이윤을 얻는다. 단기성과를 내라는 압박에 쫓겨 경쟁에 뛰어들지만, 결국 극소수만 승리하고 대다수는 좀비 수준의 생존주의자로 전락한다. 그렇게 되면 가슴속에 원한이 가득 들어차게 된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법정에서 이해관계를 다투듯 경쟁의 공정을 부르짖는 일이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니체는 약자의 원한이 정의라는 노예 도덕으로 나타난다고 질타한 바 있다. 약자는 정의를 입에 달고 살지만, 사실 그 정의란 강자에 대한 복수심이 변형되어 나타난 것이다. 강자의 가치를 악으로 규정하면서도 정작 직접적인 복수를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원한으로 굴절된다. 이러한 원한은 자신을 고통받는 선한 자로 상상할 때 보상받는다. 여기저기 떼로 몰려다니며 상상의 적에게 원한을 쏟아내고, 그것을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니체의 이러한 비판은 마치 현재 우리 사회를 겨냥한 듯해, 아프다. 원한에 가득 찬 청년이 내뱉은 혐오 언어가 온 나라에 가득하다.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공격하고 죽인다. 원한-혐오-정의-죽임의 회오리 광풍이 사회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사회학자 지멜은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회적 삶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사람 사이의 모든 접촉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거저 주면서 시작한다. 받은 사람은 우선 받은 선물에 맞먹는 것을 되돌려준다. 바로 이러한 호혜성에서 사회가 형성된다. 그래서 대다수 사회는 법으로 호혜성을 강제한다. 하지만 법이라는 외적 강제에 떠밀려 호혜성을 갚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외면적인 관계만으로 엮인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를 구성한다고 할 수 없다. 법이 없는 사회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갚을 수 있다. 그러려면 선물이 받는 사람의 영혼을 일깨워야 한다.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를 통해 받은 사람은 준 사람에게 도덕적으로 엮인다. 감사는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작게는 준 자에게, 크게는 공동체 전체에 보여주는 것이다. 감사는 과거의 받은 선물에 대한 기억을 불러내 현재의 행위와 연결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의 기억으로 함께 나간다. 이 기억이야말로 공동체에 헌신하게 만드는 도덕적 힘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선물과 감사의 고리가 끊어져 있다. 기성세대가 사회적으로 희소한 자원을 움켜쥔 채 청년 세대에게 결코 선물로 주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준다 해도 꼭 경쟁을 시켜 대다수를 패배시킨 후 소수의 승자에게만 찔끔 내어준다. 대다수 청년의 가슴에 감사는커녕 원한만 가득하다. 이렇게 계속 가면 우리 사회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결국 소멸한다. 요즘 저출산과 지방소멸이 맞물리면서 재생산의 위기가 오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할 것 없이 허둥지둥 온갖 청년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당사자주의를 내세우며 청년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해주겠다고 뒤늦게 비위 맞추기에 나섰다. 하지만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어도 청년의 내면에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우지 못하면 소용없다. 감사는 아무리 갚아도 영원히 다 갚을 수 없다는 부채 의식이 생길 정도로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을 때 나온다. 온갖 사업 명목으로 경쟁시켜 청년의 가슴에 원한만 키우지 말고, 이왕 줄 거면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길 정도로 거저 주라! 그것이 원한에 빠진 청년을 도덕적으로 묶어 지속 가능한 미래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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