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복도 / 이준헌 기자
행복추구권을 처음 규정한 문서는 미국 독립선언문이다. 1776년 7월4일 필라델피아 대륙회의(2차)에서 승인된 독립선언문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고 적시했다. 7월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됐다.
대한민국 헌법 10조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주도한 8차 개헌 때 새로 넣어 오늘에 이른다. 군사반란과 광주학살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가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헌법에 담은 건 짓궂은 역설이다. “민주도 정의도 없다”고 지탄받은 민주정의당 집권기는 행복을 추구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야만의 시대였다.
헌법 10조가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이후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구제하는 헌법적 근거로 활용됐다. 헌법재판소는 1997년 동성동본 간 혼인을 금지한 민법 809조 1항에 대해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담은 헌법정신에 어긋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6년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면서 호적상 여성으로 기재된 남성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신청을 허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3월 발의한 개헌안에서 ‘외국인 200만명 시대’를 반영해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하려 시도했다.
문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헌법 10조를 호명했다. “개인이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나라”를 좌표로 제시했다. 국민 각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복지국가 이상을 헌법 10조의 정신에 빗댄 것이다. 일제강점기 유산인 ‘국민학교’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꾼 지 25년이 흘렀다. 동원·희생·국민교육을 앞세운 국가주의적 사고를 넘자는 뜻이 담겼다. 국민·국가의 관계를 ‘국가를 위한 국민’에서 ‘국민을 위한 국가’로 재정립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