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평등버스

정제혁 논설위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평등버스가 17일 오전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출발하고 있다. 차별철폐연대가 주최하는 평등버스는  서울을  출발해 2주간 전국을 돌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한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평등버스가 17일 오전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출발하고 있다. 차별철폐연대가 주최하는 평등버스는 서울을 출발해 2주간 전국을 돌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한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미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벌어진 ‘버스 보이콧’ 사건은 흑인 민권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1955년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버스에서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아 체포되자 흑인들은 버스 보이콧으로 저항했고, 연방대법원은 흑백 좌석을 분리한 시 조례와 그 근거가 된 주법률에 위헌 판결을 내린다. <셀마>는 10년 뒤 같은 곳에서 벌어진 흑인투표권 쟁취운동(몽고메리 행진)을 다룬 영화다.

비폭력 평화행진 도중 마틴 루서 킹 목사는 말한다. “난 지쳤어. 우린 뭘 하는 거지?” 함께 걷던 목사가 답한다. “벽돌을 하나하나 쌓는 거지. 우리는 최대한 길을 닦는 거야, 돌멩이 하나씩.” 희망은 만들어가는 거라는 이 말은 “희망이란 길과 같은 것이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고 한 루쉰의 잠언과 통한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 309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해고노동자 김진숙이 수만명이 이어진 ‘희망버스’에서 본 것도 벽돌 한 장, 돌멩이 하나가 쌓여 만드는 기적이었다. 그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만들어낸 너무 행복하고 기적 같은 싸움이었다”고 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는 성소수자 차별금지에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이 거세다. 이 법을 대표 발의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문자폭탄을 받았다. 법안 발의 요건인 의원 10명을 간신히 채웠고, 더불어민주당 의원 176명 중 2명만 참여했다. 민주당 김회재 의원은 24일 개신교 단체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토론회를 연다. 그는 지난 12일 ‘위장된 차별금지법 반대와 철회를 위한 한국교회기도회 및 출범식’에서 “하나님께서 이 법 제정에 관여하고 계시고, 한국 교회가 기도하기 때문에 제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 17일부터 ‘평등버스’ 운행을 시작했다. 전국 25개 도시를 돌며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을 얘기한다고 한다.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도, 희망버스도, 평등버스도 지향점은 같다. 보다 평등하고 차별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평등버스가 차별과 편견의 두꺼운 빙벽을 녹이는 또 하나의 작은 불씨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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