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당장 코로나19의 재확산에 대한 우려도 원인 중 하나일 테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불안의 근원은 훨씬 더 오래되고 뿌리 깊다. 전 세계적으로 공동체에 대한 대중적 분노와 기성세대 특히 엘리트들에 대한 불신은 좀체 수그러들 줄 모른다. 갈수록 둔화되는 경제성장률, 정체된 생산성, 사회적 이동 기회의 축소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등등. 중산층은 점점 사라지고 부모세대는 자식들의 미래, 특히 그들이 가지게 될 일자리와 사회경제적인 불안정에 대해 걱정이 크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최근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계약은 시민(citizenship)의 권리와 책임이라 정의할 수도, 개인과 제도 간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틀이라 칭해도 좋을 것이다. 뭉뚱그려 얘기하자면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정치, 사회, 경제 제도와 함께 가치, 정의 개념 등의 총합쯤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중요한 건 우리가 사회계약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형태의 그것을 만들어가야 할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동체 내에서 개인의 삶, 특히 경제적 삶은 노동자, 소비자, 저축자의 지위와 역할로 특징지을 수 있다. 21세기가 시작되고 20년 지난 지금 그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나.
지난 20년간 주요국의 고용은 기록적 수준으로 증가했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의 이동, 자동화와 글로벌화의 진전 등에 기인한다. 2018년 OECD 회원국의 평균 고용률은 71%. 그런데 파트타임 노동자의 증가가 그 주된 원인이다. 일자리와 임금 양극화는 오히려 더 심화됐다. 고숙련·고임금 노동자나 저임금·저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늘어난 반면, 중숙련·중임금 노동자 수는 크게 감소했다. 지난 20년간 22개국에서 실질임금은 불과 0.7% 증가했다. 노동시장은 더욱 유연해졌고, 개별 노동자의 책임은 더욱 커졌다. 정규직 노동자의 해고와 임시직 노동자의 고용을 규율하는 고용보호제도는 지난 20년간 크게 축소되었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볼 때, 기술 변화로 인해 통신, 의류 등 재량재 가격은 하락하고 품질은 개선되어 소비자 후생을 증가시켰다. 반면 주거, 의료, 교육과 같은 기본재에 대한 지출 비중은 크게 늘었다. 특히 주거비용은 대다수 국가에서 전체 소비지출의 4분의 1 이상이다.
저축자 관점에서 보자면, 퇴직 이후 기대생존연수는 평균 20년이다. 그러나 공적연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 기간은 고작 10년이다. 절반 이상의 개인은 퇴직 이후를 대비한 저축을 못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은 퇴직저축에 대해 개인의 책임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늘어난 퇴직기간과 공적 및 기업저축의 감소를 벌충하기 위해선 가계의 저축이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임금 및 소득의 광범위한 정체와 기본재의 비용부담 증가로 인해 가계저축률은 많은 국가들에서 하락(2000년 이후 5%포인트 하락)하고 있다. 심지어 가계저축은 전체 가계의 일부에만 집중되고 있다.
매킨지글로벌연구소는 2가지 복합지수를 만들어 국가별 유형을 비교했다. 하나는 고용보호나 직업훈련 등 비시장적 제도들이 시장을 보완하는 정도를, 다른 하나는 정부지출이 개인적인 경제적 결과를 보전하는 정도를 측정했다. 특징적인 점은 유형과 상관없이 모든 국가에서 지난 20년간 시장을 보완하는 제도들의 역할이 크게 줄고,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한편, 이를 보전하기 위한 정부지출은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법률이나 사회적 안전망뿐 아니라 기업·노동자 간 이뤄지는 다양한 관행과 이해조정 장치들을 포괄한다.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 CEO들의 사회적 책임선언이나 다보스선언이 주목받는 이유이다. 새로운 사회계약은 제도의 역할을 복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