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경제정책이 성공하려면 경제주체들의 신뢰를 얻고 있어야 한다. 정부의 실력이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설득할 수 있는 소통능력이 갖춰져 있을 때 정책의 효율적 집행이 가능해진다. 정책의 정당성과 합리성이 의심받기 시작하면 백마디 말도 효과가 없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의 홍남기 2기 경제팀은 현재 신뢰의 위기에 처해 있다.

오관철 경제에디터
역시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정책에 있어서의 실정이다. 지난 14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현 정부 부동산정책 평가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65%에 달해 2017년 8월10일 조사 이후 가장 높았다. 첫 번째 조사 당시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23%였다. 가계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에 몰려 있는 만큼 부동산정책은 가계에 초미의 관심사다. 65%가 잘못했다고 하면 사실상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요 책임은 경제팀에 있다. 세제·금융규제, 공급확대, 서민주거안정 등에서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했고 정교한 메시지 관리도 부족했다. 길게 보면 집권 후 보유세 강화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적당히 관리하겠다는 수준에 머물렀고 ‘똘똘한 한 채’로 투기 수요를 집중시킨 것도 정부다. 등록 임대주택에 부여한 과도한 혜택의 부작용은 2년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지만 정책에 반영되지 못했다.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던 대통령의 공언은 허언이 됐다. 그럼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물론 부동산정책은 특정 정부의 실책이라기보다는 누적된 결과에 따른 성격이 강하다. 부동산시장 안정에 필수적인 보유세 강화는 진보냐 보수냐 정부 성격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했고, 부동산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욕구에서 자유로운 정부는 사실상 없었다. 비판을 위한 비판, 여론 호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집값 불안 조장 등이 정부의 발목을 잡은 측면도 부인키 어렵다. 그럼에도 실정의 책임은 저금리 환경이나 과거 정부의 잘못이라기보다 정부 정책결정의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논리는 민심 이반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구차하다.
시장은 이미 경제부총리나 청와대 정책실장,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보다 여당 원내대표나 대선주자들의 말을 더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여당을 중심으로 백가쟁명식 경제해법이 등장하면서 경제팀의 존재감은 미약해진 지 오래됐다.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바람을 불어넣을 때다. 정책 난맥상을 둘러싼 인내심이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경제팀의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부동산대책이 아니더라도 재난지원금 지급에서 보여준 과단성 부족과 정책조정능력의 미흡함은 경제팀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거론돼 왔다.
국회에서 종부세법 개정안과 임대차 3법 등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법안이 통과된 만큼 차질 없는 연착륙을 위해서도 쇄신이 필요하다. 부작용을 줄여가며 허점을 메우되 집값 불안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집값 안정에는 보수·진보,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야당이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제팀은 협치에도 걸림돌이다. 시중에 자금이 많이 풀려 자산시장이 들썩이는 건 세계의 공통적 현상이다. 조금만 틈이 보여도 부동산시장은 언제든지 다시 요동칠 수 있으며 이는 회복 불능의 레임덕으로 연결될 수 있다.
가장 심각한 상황은 정책수용자들이 정부에 큰 기대를 걸지 않게 되는 상황, ‘체념적·자학적’ 분위기가 확산되는 경우다. 그러지 않아도 코로나19로 시민들은 지쳐가고 있다. 중국 속담에 “나무를 심기에 가장 좋은 때는 20년 전이었다. 두 번째로 좋은 때는 바로 오늘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무가 주는 풍성함을 맛보려면 적어도 20년 전에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심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여당에는 부동산시장 정상화를 위해 장기적 로드맵의 첫발을 떼겠다는 다짐이 필요한 시기다. 인적 쇄신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사람도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청와대 인사들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들의 다주택 보유 실태와 강남 부동산 집착을 통해 시민들은 정부가 믿음직하고 이타적일 수 있다는 희망은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됐다. 시민들의 허망함을 달래줘야 한다. 신상필벌의 인적 쇄신은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