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학생들 “TV·라디오가 학교죠”

김향미 기자
지난 19일(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국립자치대학 캠퍼스 내 경기장 관중석에서 수험생들이 입학시험을 치르고 있다. 멕시코시티|AP연합뉴스

지난 19일(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국립자치대학 캠퍼스 내 경기장 관중석에서 수험생들이 입학시험을 치르고 있다. 멕시코시티|AP연합뉴스

코로나19 피해가 심한 중남미 국가 학생들이 교육받을 기회를 잃고 있다. 학교가 문을 닫아 대면 수업은 물론 인프라 부족으로 온라인 수업 등 원격 수업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멕시코 등은 TV나 라디오 교육방송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나라별로, 또 한 나라 안에서도 소득 수준에 따라 ‘교육 격차’가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멕시코 정부가 24일부터 3000만명 학생들을 대상으로 TV·라디오를 통한 ‘원격 수업’을 진행한다고 멕시코 매체 엘 우니베르살 등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코로나19 확산에 사실상 올 연말까지 학교 문을 열 수 없게 되면서 국가 차원에서 TV·라디오를 통해 학사 일정을 진행하는 것이다. 에스테반 모크테수마 교육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이들을 계속 교육하기 위한 노력이자 도전”이라고 말했다. 멕시코 정부는 24시간 학년·과목별로 교육방송을 내보낼 계획이다.

코로나19가 퍼지면서 많은 나라들이 학교 문을 닫고 온라인 수업을 도입했지만 중남미 국가들에선 인터넷 보급률이 낮아 그마저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인 멕시코도 인터넷 접속 가능 비율이 전체 가구의 56%에 불과하다. 반면 TV 보급률은 93%. 방송은 쌍방향은 불가능하지만, 유일한 대안인 셈이다.

멕시코 교육부 교육과정 개발 담당자인 마리아 멜렌데스는 지난 22일 미 CNN에 “학교 문을 닫는 것은 힘든 결정이었다. TV와 라디오로 수업을 함으로써 교육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CNN은 “TV와 라디오 방송으로는 근본적인 교육 불균형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공립학교 교사인 에란디 하코보 마르티네스는 “TV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학생들은 질문이 있어도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교육 격차는 존재했고, 이 격차는 더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멕시코 내 상대적으로 부유한 멕시코시티에선 2019년 기준 중·고등 교육기관 등록률이 92%이지만, 남부 지방 치아파스주에선 그 비율이 59%로 떨어진다.

TV나 라디오 교육방송으로 학교 공백을 채우고 있는 브라질이나 콜롬비아, 페루 등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볼리비아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자니네 아녜스 볼리비아 임시 대통령은 이달 2일 ‘2020년 학년도’ 학사 일정을 조기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볼리비아는 비도시 거주 인구가 35%에 달한다. 컴퓨터는 물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도 상당수다. 원격 수업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이유로 올해 학사 일정을 아예 포기한 것이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 인근 엘 알토 내 한 공동묘지에서 코로나19 사망자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엘 알토|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8일(현지시간)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 인근 엘 알토 내 한 공동묘지에서 코로나19 사망자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엘 알토|로이터연합뉴스

중산층 부모들은 사립학교나 사설 학원 등을 이용해 원격 수업을 지원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은 대책이 없다. 수도 라파스 내 한 공립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두고 있는 세사르 마마니는 “당국은 아이들의 교육을 가지고 장난쳐서는 안된다. 이 상황을 진지하게 대처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식당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온 후에야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하루종일 어떤 교육이나 돌봄을 받지 못할 아이들을 걱정했다. 유엔은 “인간 발달에 대한 좌절과 기회의 상실”이라며 볼리비아 정부에 학기 조기 종료 결정을 바꾸라고 촉구했다.

국제 미디어 그룹 바이스(VICE)는 지난 13일 “볼리비아에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 돈벌이에 내몰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시골 지역에 살고 있는 14살 요엘 아리코나 리베라는 코로나19 유행 전엔 학교를 다니면서 심부름과 청소로 돈을 벌었지만, 학교도 문을 닫고 일거리도 줄어들자 최근엔 건설 현장에서 하루종일 일하고 있다. 볼리비아 아동노동자 지원 재단의 이사인 산드라 카이과라는 “당장 먹을 음식을 사는 게 중요해지면 교육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이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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