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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광화문 집회와 사법적 판단

입력 2020.08.31 03:00

수정 2020.08.3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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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광복절의 광화문 집회는 서울행정법원이 서울시의 집회금지 처분에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면서 강행되었다. 해당 재판부 판사의 해임이나 탄핵을 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가 8월30일 기준 33만명을 넘어섰다. 집행정지 사건을 다룬 신문기사의 인터넷 댓글을 보면 판사가 자신의 우파적 성향에 따라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판사가 법대로 내린 결정을 왜 문제 삼느냐는 주장도 보인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판사는 아주 내밀한 사이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관해 말하는 일이 없다. 대법관 후보자들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결같이 “보수도 진보도 아니며 오직 법에 따라 판단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판사는 자신이 정치적으로 중립해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확정된 사실을 놓고 내리는 판사의 판단이 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결론이 어떤 정치적 성향에 의하여 내려진 것이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또한 쟁송에 나선 당사자들이 제대로 주장을 펴고 증거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판사에게 왜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느냐고 탓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사실의 확정 자체에서부터 판사의 어떤 의식성향이 작동해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실 판사의 의사결정 과정이 반드시 법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은 좀 순진한 견해다. 미국의 판사이자 법철학자인 제롬 프랑크가 내세운 법현실주의는 판결이 법규가 아니라 감정, 직관적 예감, 기질, 편견, 기타의 비이성적 요소들에 터 잡아 사실오인을 저지르는 사례가 많다고 주장한다. 사법행태에 관한 경험주의적 연구도 여기에 상당 부분 동조한다. 때로 판사 개인의 편향된 시각은 판사 본인도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판사의 편향된 시각을 지우거나
거짓말을 가려내는 과목은 없다
스스로 편향·편견을 배제하는
자세와 혜안을 기대할 수밖에

이번 사건에서의 쟁점은 감염병의 확산 억제라는 공익을 위해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어느 선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였다. 법원이 법대로 결정을 내렸다고는 해도, 그 제한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한 법(실정법)은 없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감염병을 맞은 오늘날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이 문제에 관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법정에서 감염병의 확산 위험에 관한 사실의 인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증거법은 오판을 최소화하도록 고안된 장치지만, 대립하는 증거 중 어느 것을 믿어야 할지는 판사의 재량이다(자유심증주의). 그러므로 언필칭 법대로 한다고 하지만, 이런 유의 사건에서 결론에 이르는 데 가장 중요한 기제는 판사의 사법철학이다. 판사의 의식성향이 어떤지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묻게 되는 것이다.

법원의 이번 결정엔 몇 가지 의문이 든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 결정이 내려질 무렵 서울행정법원의 다른 5개 재판부에서는 여러 보수단체가 유사한 사안에서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 8건이 모두 기각되거나 각하되었다는 사실이다. 유독 제11부에서만 2건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연설하고 행진하고 구호를 외칠 것을 예상하긴 어렵지 않았을 터다. 따라서 집회가 잠복기간을 거친 후의 감염병 확산에 기여하리라는 점은 개연성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방역당국은 이미 집회가 열리기 수일 전부터 “지금 수도권은 코로나19 대규모 집단 유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회금지명령이 감염병 전파를 예방하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라고 주장할 명확한 자료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 과연 타당했을까. 유일한 수단은 아니더라도 유효하고 필요한 수단 중 하나라는 점은 응당 고려했어야 할 것이다. 신청인 측이 주장한 집회의 규모는 모두 합쳐 3100명이었지만, 실제로는 그 몇 배로 커졌다. “집회 참가자들이 1m 이상 떨어져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준수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라는 신청인 측 주장이 현실적일 수 없음도 상식에 가까웠을 것이다. 결정을 내릴 당시 재판부가 가지게 된 심증은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신청인 측 주장이 허언임을 간파할 수는 없었을까. 아니면 서울시가 유독 제11부 사건에서만 제대로 변론을 못한 것인가.

법률가의 교육과정에서 편향된 시각을 지우거나 거짓말을 가려내게 하는 과목 같은 것은 없다. 결국 판사의 무의식적 편향을 포함한 편견을 배제하는 자세와 혜안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무의식적 선입견이나 직관을 다스리기 위해 판사의 심리분석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롬 프랑크의 제안이 꼭 황당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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