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여권의 유력 정치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성추행 피소 사실이 드러났다. 피해자는 이번에도 비서였다. 많은 이들이 기시감을 느꼈다. 여권 지방자치단체장의 성폭력 사건이 드러난 것만 이번이 몇 번째인가. 이라영의 신간 <폭력의 진부함>은 두 번의 대대적인 조문 행렬이 있었던 지난 7월, “애도와 조문이 어떻게 권력이 되는지 노골적으로 보여준 시간”을 기록하며 문을 연다. 책 제목인 ‘폭력의 진부함’이란, 이처럼 되풀이되는 권력형 성폭력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일상에 촘촘히 그물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폭력의 진부함
이라영 지음/갈무리/312쪽/1만8000원
미투 운동 2년,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사후적으로도, 폭력은 아주 ‘평범한 얼굴’로 나타났다. 가해자에 대해서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며 한 사람의 인생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 애쓰지만, 피해자에 대해선 ‘피해자다움’의 기준을 들인댄다. 이 기준에 조금이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고통받는 피해자가 아니라면 끊임없이 그 피해를 의심을 받는다. 이후 피해자의 시간은 ‘진정한 피해자’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수치심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몫이다. 피해자에게는 폭력의 경험이란 결코 ‘진부’할 수 없다.
안희정 모친상 조문에 몰린 권력자들,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러진 박원순의 5일장은 어떤 이들에겐 ‘애도의 시간’이었지만 어떤 이들에겐 ‘폭력의 시간’이었다. 여당 대표는 고인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예의가 아니다”라고 호통쳤다.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애도’라는 이름으로 ‘예의 있게’ 묵살됐다. 애도는 공적이었고 권력형 성폭력 역시 공적 권력을 바탕으로 이뤄졌지만, 성폭력 피해만이 ‘사적 영역’으로 취급됐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예술사회학 연구자인 저자 이라영은 이 책 <폭력의 진부함>에서 진부하게 반복되는 폭력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책에는 ‘얼굴, 이름, 목소리가 있는 개인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었다. 복잡한 서사를 이해받는 권력자들과 달리 소수자와 약자들은 ‘보통명사’로 흔히 뭉뚱그려지고, 개인으로서의 인격을 박탈 당한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보통명사로 불리는 이들은 역설적으로 보편적 존재가 되지 못한다. 보편적 존재가 되지 못한 사람은 개별성도 상실한다. (…) 복잡한 개인으로 이해받을 수 있다는 건 권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흑인의 삶은 ‘모든 삶’에서 용해되고 여성은 ‘사람’ 안에서 투명해진다.” 이들에게 최선의 저항 방식은 얼굴과 이름, 목소리가 있는 ‘개인 되기’라고 책은 말한다.
그는 미국의 노예제 폐지 운동가 프레더릭 더글라스(1818~1895)의 사진에서 책의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19세기 미국에서 초상 사진을 가장 많이 남긴 이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흑인 노예로 태어나 스스로를 해방한 더글라스였다. 저자는 당당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더글라스의 ‘얼굴 남기기’가 지워진 존재였던 흑인으로서 지배권력에 저항하는 일종의 ‘시각적 자서전’이었음을 읽어낸다. “얼굴을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기. 이처럼 권력자에게 초상화는 권력을 증명하는 도구이지만 소수자에게는 운동 방식이다. (…) 흑인 얼굴의 ‘공식화’는 곧 인권 투쟁의 역사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사진을 남긴 더글러스의 평생에 걸친 노력처럼, 폭력에 맞선 소수자들의 발화가 공론장에서 더 많아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습속이 되어버린 차별, 문화로 자리한 폭력은 일상적으로 인식하고 맞서기 힘들지만, 사적이고 예외적으로 치부되어온 개인의 경험이 더 많은 언어로 쏟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 1부에서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자신이 겪은 각종 폭력과 차별의 경험을 복기하는데, 이는 여성이 겪는 온갖 문화적 폭력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결코 사적인 역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책 2부는 이런 그의 개인적 경험들이 왜 개인적일 수만은 없는지에 대한 일종의 해석이다. 저자는 책에서 미투운동과 기술복제시대의 디지털 성폭력, 성매매와 리얼돌 논란, 영화부터 문학작품까지 각종 텍스트 분석을 통해 ‘문화화된 폭력’의 문제를 짚는다.
많은 경우 ‘여성이 하는 말’은 공손하길 요구받지만 수없이 변주되어온 ‘OO녀’라는 멸칭이 그러하듯 ‘여성에 관한 말’은 상스럽게 재생산된다. 그리고 저항의 언어는 늘 진압당한다. “저항하라. 단, 나를 기분 나쁘게 하지 말라.” 그렇게 ‘이성애자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는 성소수자 운동’, ‘비장애인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 ‘남성 기득권을 침해하지 않는 여성운동’ 등 사회가 정한 ‘정답’을 들이민다.
그럼에도 저자는 말하기의 중요성을 부단히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을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발화를 독려하며 연대하기 위해 썼다”고 했다.
“여성을 비롯한 많은 사회적 약자는 살아서도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누군가는 살아서도 목소리가 들리지 못한다. 반면 권력은 죽어서도 목소리를 얻는다. (…)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는 얼굴과 부당하게 노출되는 얼굴, 사라지는 이름과 부당하게 공개되는 이름, 그리고 묵살당하는 목소리가 있다. 폭력은 진부하게 반복되는데, 이에 대한 저항은 언제나 진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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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수 기자 sms@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