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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과 감사

입력 2020.09.11 03:00

수정 2020.10.1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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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국내 최초로 장기 기증 가족과 이식인 간 만남을 성사시켰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18세 된 딸이 교통사고로 뇌사판정을 받자 수많은 외국인에게 딸의 장기를 기증한 한국인 엄마. 그중 신장과 췌장을 이식받은 19세 미국인 소녀가 4년 만에 엄마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은 현행법상 기증인 가족과 이식인 사이에 교류를 금지하지만, 미국에서 장기 기증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만남이 가능했다. 스튜디오에서 만난 두 가족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서로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보고 있자니 깊은 슬픔을 동반한 느꺼운 감동이 밀려온다. 모르는 타자에게 아무 대가 없이 장기를 ‘선물’로 기증한 ‘이타적 행위’가 ‘감사’로 응답받을 때 민족·국가·젠더·인종·종족·세대·계급과 같은 온갖 사회적 범주를 초월해 일면식도 없는 두 가족을 깊은 연대로 묶는다. 시청자는 새삼 장기 기증의 가치에 대해 되새기게 된다. 하지만 곧 의문이 떠오른다. 이렇게나 기증인 가족과 이식인 사이에 연대가 형성되고, 시청자에게도 광범한 호소력을 지니는데 왜 한국 사회는 이식인이 기증인 가족에게 감사를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가?

현행 장기기증법은 기증인 가족과 이식인 사이의 신원정보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혹시라도 장기가 상품으로 매매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장기 기증은 익명의 이식인에게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증여해야 하는 이타적 선물로 굳어졌다. 문제는 이러한 이타적 선물이 거의 증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19년 기준 4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기 이식을 기다리고 있지만 고작 7% 조금 넘는 사람들만 이식을 받았다. 그나마 대부분의 장기 기증은 이미 강력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한국 사회에서 장기는 절대로 가족 밖 타자에게 ‘완전히’ 양도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주었지만 여전히 보유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그런데도 왜 모르는 타자에게 자발적으로 완전히 양도하라고 요구하는가? 이미 많이 가진 낮은 가치의 생필품은 일면식도 없는 타자에게 거저 주고 그 운명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나 질환으로 뇌사 상태에 빠진 가족의 장기를 어찌 저가의 생필품처럼 모르는 타자에게 거저 주고 잊으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이 인간의 사회적 삶에서 가능한 일인가?

사회학자 지멜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진정한 자유인은 아무 이유 없이 타자에게 ‘처음으로’ 선물을 거저 건네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자발성은 애초에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답하기 어려운 고도로 형이상학적인 물음이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이 하나 있다. 주는 자는 자발적으로 주었을지 모르지만, 받은 자는 자신이 원한 것도 아니고 받는 줄도 모르고 증여를 당했다. 이 땅에 태어난 우리가 바로 그렇다. 우리는 비록 무지 속에서 증여를 당했지만, 뒤늦게나마 이를 알게 됨으로써 증여자에게 도덕적으로 속박당한다. 이러한 역설에서 인간의 사회적 삶이 열린다.

장기기증법은 한국 사회가 이러한 사회적 삶의 ‘역설적 진리’에 눈감으라고 강요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메타포다. “진리를 모를지니 무지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누가 줬는지 알지도 못하게 하고, 그래서 준 사람에게 도덕적으로 속박당하지 않게 만든다. 누구도 먼저 주려 하지 않고, 설사 준다 해도 감사로 응답하지 않으니 영혼의 공동체가 만들어질 리 없다. 준 사람은 집합 기억에서 사라지고, 받은 사람은 이에 헌신하지 않을 자유를 누린다. 망각과 자유로 누더기처럼 덧기워진 우리의 현대사가 정확히 이런 모습이다. 하지만 대가는 치명적이다. 사회 전체에 선물과 감사의 고리가 끊겨 공동체의 불멸이 위협받는다. 공정의 권리 언어와 원한의 노예 감정에 휘말려 서로 물어뜯는 한국 사회의 처참한 현실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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