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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의 약점, 사회적 경제

입력 2020.09.21 03:00

수정 2020.09.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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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스위스의 1인당 국민소득은 최상위권인 8만달러 근처다. 북유럽의 대표적 산유국인 노르웨이보다도 높다. 한국에 복지국가의 대표로 소개된 스웨덴이 5만6000달러 정도 된다.

학부 시절 스위스 경제는 유럽의 빈국이라고 배웠고, 강대국 경제에 연동해서 돌아가는 ‘위성경제’라고 배웠다. 프랑스 유학 시절 스위스에 대해 배울 때에도 인권과 외교는 강해도 경제적으로는 별거 없는 나라, 그 정도라는 것 같았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스웨덴은 노조가 강하고, 진보가 주도적인 나라다. 반면 스위스는 정치 성향이 보수적이고 완강하다. 여성 참정권도 1971년에나 허용할 정도로 늦었다. 극우파도, 민족주의 성향도 강하다. 지역자치를 중히 여기는 보수들의 나라, 이렇게 생각하면 독일, 프랑스는 물론, 스웨덴과도 결이 확연히 달라 보인다. 유럽연합(EU) 가입도 보수들의 반대로 하지 못했다.

스위스에서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존경을 받는다는 고틀리프 두트바일러의 평전의 추천사 부탁을 받아 최근에 읽었다. 좀 충격을 받았다. 스위스의 유통업계에서 제일 큰 두 개의 기업이 협동조합이고 그중 하나가 미그로(Migros)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1941년에 주식회사였던 미그로가 10만명의 조합원에게 주식을 나누어주면서 협동조합으로 전환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미그로의 출발과 형성 그리고 협동조합으로 바뀌는 시대상과 경제적 맥락은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국의 보수들에게 우리 모두를 위해 이 책만은 꼭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차 세계대전 한가운데, 스위스는 참전은 안 했지만,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극도로 불안한 상태였다. 바다에 접하지 않은 내륙 국가에서 수입과 수출은 봉쇄되다시피 했고,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온갖 협잡과 매점매석 그리고 실험이 동시에 벌어졌다. 어쩌면 코로나19 국면의 지금 우리 상황과 비슷할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의 공포가 공존한다.

유럽의 작은 나라인 스위스가
세계 최고 부국이 된 이면엔
협동조합 실험 성공도 한몫
사회적 경제는 좌파의 전유물?
한국 보수의 ‘사고 혁신’ 필요

두트바일러는 히틀러와 나치에 대해 강력히 비판한 가장 유명한 스위스인이다. 히틀러가 스위스를 침공하면 제일 먼저 교수형을 당할 사람이 바로 두트바일러일 거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아마도 한 상인에게 회사를 뺏기는 쉽지만,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정책적 목표로 내 건 히틀러가 10만명의 개별적 소유주의 것을 모두 뺏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아내는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에 찬성했지만, 그의 오랜 파트너인 회계사는 반대했다. 미그로의 강점은 발빠른 영업 전략이었는데, 협동조합에선 이런 장점이 사라질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이 전환은 대성공을 거뒀고, 전후 문화와 스포츠 쪽에 대한 투자 등 미그로는 계속 발전하게 된다. 21세기인 지금, 호텔 분야 등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미그로는 여전히 유통회사로 건재하다.

스위스의 고틀리프 두트바일러가 진보 인사였을까? 그는 상인이었고, 정치적으론 보수 혹은 제3당에 가깝다.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의 출발기에 보수 정치가 강력히 작동했다는 건 역사적 상식이다. 이탈리아에서 협동조합을 통치의 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사람은 파시즘의 무솔리니다. 지역 조합 대표로 국회의원 제도를 바꾸려고도 했다. 패전 이후 일본에서 생활협동조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절, 자민당이 이 흐름에 우호적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데이비드 캐머런의 영국 보수당이 집권에 성공할 때에도 사회적 경제를 어젠다 맨 앞에 내세웠다.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다. 농협을 지금의 농협으로 만들고, 통치 기반으로 만든 게 5·16 직후의 박정희였다. 보수 정치 중 박정희만큼 협동조합을 중히 여긴 사람도 한국 정치엔 없을 것이다.

DJ 정부에서 생협법을 추진한 것은 당시 농림부 장관이던 김성훈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사회적 기업법은 당시 새누리당 진영이 주도했다. MB 정부에서는 믿거나 말거나, 김무성과 김성식이 공동발의했다. 박근혜 정부는 최근, 사회적 경제에 대한 주요 법안을 만들지 않은 첫 번째 정부가 되었다. 이걸 주도한 당시 새누리당의 유승민을 너무 미워해서였을까?

스위스나 스웨덴이나 혹은 독일이나 미국까지, 일정 규모에 도달한 국민경제는 민간부문과 공공부문 그리고 사회적 경제라는 세 개의 축을 갖고 있다. 우리는 농협 같은 사실상의 정부기관을 빼고 사회적 경제 분야의 고용률을 살펴보면 전체 고용의 1%도 안 된다. 남들은 다 가진 경제의 세 번째 다리를 우리만 안 갖고 있다. 2차 세계대전 같은 극도의 위기와 혼동기에 스위스는 고틀리프 두트바일러라는 상인이 사회 혁신의 일환으로 사회적 경제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박근혜가 유승민을 너무 증오하다 보니, 그 한국의 보수들만 사회적 경제가 좌파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건 한국 보수의 정책적 약점이다. 코로나 위기, 정치적 보수 그러나 혁신적 상인이었던 고틀리프 두트바일러, 그의 삶을 잠시 살펴보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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