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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부정의 시대

입력 2020.09.22 03:00

수정 2020.09.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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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손타쿠 문화가 한국의 정·재계를 흔들고 있다. 손타쿠란 일본어의 뜻은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것. 우리말로 하면 ‘알아서 기다’ 정도 될 듯하다.

이총희 회계사

이총희 회계사

기업은 손타쿠가 극단적으로 심한 곳이다. 회장님은 지시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다고 하는데 온갖 부정이 일어났고, 그 부정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은 회장님이다. 하지만 회장님은 도덕적인 분이시고, 충분히 부자라서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냥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한 일이다. 그래서 회장님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들 한다. 언뜻 보면 맞는 말 같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윗사람을 위하는 것이 단순한 미덕이라 그러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수백억원의 연봉을 받는 삼성의 경영진이 이재용 부회장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발언들을 공개적으로 한 적이 있다. 사실상 자신들은 일 없이 많은 돈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왜 많은 돈을 줄까? 아마도 손타쿠 덕분일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아는, 이심전심의 가신에게 많은 돈을 주어도 아깝지 않으리라. 결국 이러한 손타쿠 문화는 내 손에 피를 묻히기 싫은 윗사람과 경제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 아랫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회장님의 의중을 잘못 알아 회장님을 곤경에 빠트린 이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손타쿠를 방조하는, 적절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 단순히 범죄의 근절이라는 목적을 위해 선의의 피해자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이들이 적절한 감독을 하지 못한 책임, 더 나아가 보상으로 이들의 행동을 유도한 책임도 있다. 하지만 회장님들이 단죄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것이 단순히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의 아들 병역문제로 시끄럽다. 일국의 장관이 거짓말을 하진 않을 테고, 문제가 있다면 아마 보좌관의 손타쿠였을 것이다. 기업범죄에 회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역시 감독 책임, 관리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내가 하지 않은 일에 책임을 지라는 것은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업범죄가 횡행할 것이고, 처벌할 수도 없는 것을. 법무부 장관이기에 손타쿠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러한 손타쿠 논란을 보며 뜬금없지만 자율주행차가 떠올랐다. 완전 자율주행차가 보행자를 사망하게 했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완전 자율주행차라 탑승자는 개입하지 않았고, 제조사를 처벌하자니 수백만건 중 한 번 정도의 오류다. 그렇다고 자동차가 처벌의 대상이 될 순 없다. 자율의 편리함은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죄는 있는데 잘못한 사람은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 손타쿠의 상황이 이익은 사유화하며 책임은 지지 않는, 자율부정의 모습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손타쿠에 감독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자율주행차의 탑승자와 마찬가지로 회장님도 부정을 직접 저지르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개입하지 않음에 따라 사람들에게 피해를 야기했고, 자신은 이득을 보았다. 물론 당사자는 억울하겠지만 그렇다고 책임을 묻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자율부정의 사회가 돼, 권력자만 면죄부를 얻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권력자의 무지가 미덕이 되어선 안 된다. 법률의 영역에선 엄격한 법 집행이, 정치의 영역에선 책임 있는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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